(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까지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가끔 제작 현장이 방송에 나와도 눈에 띄는 건 주연 배우, 메인 작가, PD 정도다. 카메라 플래시로 번쩍이는 제작발표회장도 마찬가지다. 많은 시청자에게 드라마를 만드는 '보통의 사람'들은 엔딩크레딧(제작진 소개 자막)에 올라오는 이름으로만 존재한다.
2016년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한빛 PD의 동생이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인 이한솔은 신간 '가장 보통의 드라마'에서 보이지 않는 스태프를 불러낸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된 시민단체다.
저자는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의 제보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의 24시간을 따라가며 '노예'라 자조하는 방송노동자들의 생활을 그려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태프는 근로기준법 위반, 인격 모욕, 폭력적인 업무 지시, 갑질과 성희롱에 시달려왔다. 저자는 이러한 드라마 제작 세계를 "'범죄 도시'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범죄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타 배우와 작가, PD가 받는 개런티는 회당 1억원이 넘어가지만, 카메라 뒤에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는 스태프 중엔 시급 3천800원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도 있다. 도급 계약, 턴키 계약(스태프 팀 단위로 용역료를 지급하는 형식의 계약), 프리랜서 계약 등은 방송 스태프를 쥐어짜는 다양한 '편법'들이다.
노동착취뿐만이 아니다. 막내 스태프와 여성 배우, 아동·청소년 배우들은 폭언과 폭력, 성희롱에 빈번히 노출된다. 이러한 불합리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원래 이 바닥은 이렇다"는 말로 묵살돼왔다.
저자는 '원래 그랬던 이 바닥'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근로시간 준수로 화제가 된 영화 '기생충' 등의 사례에서 보듯 제작 현장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불합리한 관행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저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과 연대의식이 있다면 드라마 현장을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필로소픽 펴냄. 240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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