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 32주년 앞두고 박종철인권상 수상…"사회·자본구조 따른 폭력 계속돼"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성찰 부족…사회적 기본권 걸음마 단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987년 6월항쟁을 촉발한 박종철 열사가 당시 국가폭력 희생자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고(故) 김용균 씨가 이 시대의 박종철 열사라고 생각합니다."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자 보안관찰법 폐지 운동가인 강용주(57) 씨는 제15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을 계기로 9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도 국가폭력은 계속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씨는 전남대 의대 재학 중이던 1985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간 복역하다 1999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그는 사상전향서나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은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였다.
강씨는 보안관찰법에 따라 출소 직후 보안관찰 대상자로 지정됐지만,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 조항이 기본권을 제약한다며 의무 이행을 거부하고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는 등 제도에 저항했다.
그는 지난해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고, 법무부로부터 보안관찰처분도 면제받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지 19년 만에 보안관찰 대상에서 벗어났다.
앞서 지난 7일 박종철인권상 심사위원회는 "국가의 제도적 폭력에 맞서 일생을 건 투쟁으로 우리 사회가 인권 세상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했다"며 강씨에게 박종철인권상을 수여했다.
6·10항쟁 32주년을 박종철인권상 수상과 함께 맞이하는 강씨는 1987년 당시 박 열사가 꿈꾼 사회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87년 체제 이후 민주 정부가 들어섰고 또 촛불 정권이 들어섰지만 입시와 취업,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는 달라진 것이 없다"며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사회와 자본구조에 따른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독재나 고문이 없으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겨우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정도"라며 "장애인 이동권이나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시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 등 사회적 기본권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투쟁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나약하고 머뭇거리는 존재였지만 사상전향제도나 보안관찰법이 양심의 자유라는 절대적 인권에 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9년 출소한 강씨는 전남대 의대로 돌아가 2008년 가정의학전문의가 됐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광주 트라우마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았고, 지금은 고문 피해자 치유모임인 '진실의 힘' 이사이자 서울 영등포구 '아나파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 당시 고문 피해자였다는 강씨는 "고문은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겪게 한다"며 "뒤늦게 국가에서 제도·금전적으로 보상했다고 해도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화해하고 치유받는 해피엔딩을 원하지만, 이는 매우 잔인한 주문"이라며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고, 나도 고문받은 이후 새 삶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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