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투레트 등 유럽 수도원 기행 엮은 '묵상' 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건축가 승효상(67)은 5년 전 가까운 이들과 동숭학당이란 모임을 꾸렸다. 동숭학당 사람들은 매년 여름 주제를 하나 정해 짧게 외국을 다녀온다.
'공간'을 주제로 한 지난해 여행 무대는 이탈리아, 프랑스 일대 수도원과 성당이었다. 종교 건축은 평생 세계 곳곳을 누빈 승효상이 묘역과 함께 가장 자주 찾은 시설이기도 하다. 열흘간 2천500km를 훑은 이 여정에는 미술가, 소설가, 목수, 디자이너, 목사, 언론인, 변호사 등 각계 인사가 참여했다.
신간 '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돌베개 펴냄)는 이를 중심으로 과거 그리스, 아일랜드, 티베트 여행까지 버무려 종교와 건축에 대한 단상을 정리한 책이다.
책은 승효상이 본 여행에 앞서 찾은 로마 근교 수비아코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아슬아슬한 산벼랑에 자리한 수도원에서 1천500년 전 외지고 험한 이곳을 굳이 찾은 성 베네딕토(480?∼550?)의 '절박함'을 읽어낸다.
이를 시작으로 르 토로네 수도원, 롱샹 성당,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체르토사 델 갈루초 수도원, 클뤼니 수도원, 추방당한 수도자 기념관 등의 다채로운 풍경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랑스 리옹의 라 투레트 수도원은 승효상이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남긴 최고의 건축이라 평가하는 곳이다. 그는 1991년 수도원 본당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공간은 무한이었다. 암흑. 그 속을 뚫고 비수처럼 들어온 빛은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조화를 부리며 암흑을 농락했다."
수도원은 세상을 등진 채 신을 만나 평화를 이루려는 수도사들이 최선을 다해 지은 건물이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승효상은 '도나 노비스 파쳄'(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을 외치며 신에게 순종한 수도사들이 그 과정에서 생겨난 번민과 회의를 동료애로 극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수도원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진리에 대한 사모와 그를 지키려는 열망, 그리고 이를 남과 같이 나누려는 선의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개인 승효상의 인생도 중간중간 꺼내어 보인다.
1952년 부산 피란민촌에서 태어난 승효상의 부모는 교회를 만들다시피 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신학을 전공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가세를 일으키라는 가족의 부탁에 결국 대입 준비에 매달렸다. 평생을 괴롭힌 습관적 불면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저자는 책 제목을 '묵상'으로 지은 이유로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며 묵상하기를 거듭하는 일로 글 쓰는 시간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밀한 고백도 담은 책인 만큼 스스로 정당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만큼 애썼다는 설명이다.
520쪽. 2만8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