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abroad] 밀림은 살아있다…순다르반스

입력 2019-07-12 08:01  

[travel abroad] 밀림은 살아있다…순다르반스

(순다르반스[방글라데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살아있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방글라데시의 순다르반스(Sundarbans)에서 밀림 투어를 해보자. 휴대전화 전파조차 잡히지 않는 밀림 속에서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태고의 자연을 만끽하며 완전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 밀림 한가운데서 만난 '수달 고기잡이'

정글 한가운데를 배를 타고 탐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행 인솔자에게 낚시를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작은 기대를 안고 방글라데시 남서부 순다르반스 지역에 도착해 밀림 속 강을 항해할 페리(ferry)에 올랐다. 3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페리였는데, 얼마 안 가 작은 고깃배가 작업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로 수달을 활용한 어로 활동이었다. 훈련받은 수달이 물고기를 한쪽으로 몰면 어부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준비해뒀다던 낚시가 바로 이것이라고 여행 인솔자가 말해줬을 때 적잖이 실망했다.



이것은 직접 체험하는 게 아니라 어부의 고기잡이를 구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찬히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는 실망감을 보상하고도 남는 진귀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작은 통통배를 타고 수달 고기잡이를 확인하러 나섰다. 어부 3명이 모는 10m 남짓 되는 작은 고깃배 옆에는 수달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수달은 능숙한 솜씨로 물고기를 몰았다. 주로 맹그로브 숲 아래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쫓았는데, 수달이 고기를 몰면 구릿빛 피부의 어부들이 힘찬 구호를 외치며 그물을 끌어 올린다.
그물이 올려질 때 커다란 물고기 여러 마리가 떨어졌다. 여기저기 오가며 자맥질을 해대는 수달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봤다. 물고기를 쫓는 데 성공한 수달에게는 물고기 몇 마리가 포상으로 주어졌다. 인간과 수달의 공생이었다.
이처럼 방글라데시의 수달을 활용한 어로 활동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며 BBC 등 몇몇 방송사에서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송한 적이 있다고 한다.



◇ 순다르반스와 맹그로브 숲

이 지역이 순다르반스 국립공원이다. 순다르반스는 벵골 말로 '아름다운 숲'이란 뜻을 갖고 있다.
저기 멀리 인도로부터 흘러온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 메그나강 등이 방글라데시의 6번째로 큰 도시 쿨나(Khulna) 아래쪽을 흐르며 거대한 삼각주를 만들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습지 밀림 지역이 바로 순다르반스다. 순다르반스는 1984년 국립공원으로,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광대한 맹그로브 숲 덕분이다. 면적만 해도 인도와 방글라데시 지역을 합쳐 14만㏊에 달한다. 여기에 모두 453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보존정책에도 불구하고 공해 등으로 멸종되는 생물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맹그로브란 열대와 아열대 지역 해안가에 자생하는 나무들의 총칭으로, 특별한 한가지 수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맹그로브 숲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진으로 인한 해일이 발생하면 거대한 맹그로브 숲이 그 파동을 70∼90% 흡수한다고 한다.
뿌리를 밖으로 내놓고 호흡하며 약한 개흙(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토양이 유실되는 것도 막아준다.



◇ 신선했던 '배 위에서 1박'

순다르반스는 참으로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다. 그중 하나가 선상에서 1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배 위에서 숙박한다는 게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페리로 이동할 때 30여 명이 작은 나룻배를 이용했는데, 안전성에 의구심이 생겼다.
'큰 배가 옆으로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하는 불안감이다. 또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데 연락이 두절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다.



그러나 나룻배는 20분 만에 안전하게 페리에 가 닿았다. 무엇보다 연락 두절 상태는 우려가 오히려 만족감으로 바뀌었다.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모바일 신호가 끊어져 있었는데, 신호는 다음 날 그곳을 떠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복구되지 않았다.
처음엔 카톡을 못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얼마 안 가 마음이 편해졌다. 문명의 이기에서 한 걸음 벗어났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아무도 날 찾지 못한다. 이 작은 기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굳이 목적지를 살피느라 구글 지도를 볼 필요도 없다.'
그냥 배가 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아무리 오지인 방글라데시라도 어디서든 톡톡하면서 터지는 SNS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내가 현대인임을 각인시키지만, 단 한 곳 예외가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순다르반스였다.



◇ "이런 습지에 호랑이가 있다고?"

방글라데시 경험담을 늘어놓자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이 있다.
"맹그로브 숲에 호랑이가 있다고?" 그렇다. 질퍽한 습지인 맹그로브 지역에 호랑이들이 살고 있다.
이 호랑이가 우리가 말로만 듣던 벵골호랑이다.
순다르반스 여행의 핵심은 다음 날 아침에 떠나는 호랑이 생태 투어다. 쉽게 말해 호랑이를 보러 떠나는 여행이다.
차량에 올라타거나 멀리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여행이 아니다.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맨 호랑이 가드의 보호를 받으며 맨몸으로 호랑이가 생활하는 서식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는 여정이다.
호랑이가 나올까 싶어 초긴장 상태로 숲속을 주시하며 발걸음을 뗐다.
일행 중 한 명이 몇 발자국 떨어져 숲 내부를 둘러보는 순간 여행 가이드가 강하게 그룹으로 돌아올 것을 지시했다.
"극히 위험한 지역이니 반드시 붙어서 걷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제지를 당했던 사람은 "숲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그림자를 봤다"고 말했다.
선진국도 아닌 데다 외신 등에서 벵갈 호랑이에 희생당한 마을 주민들 기사를 심심찮게 읽었던 터라 긴장은 더했다. 이런 상태로 2시간 가까이 둘러보다 보니 나중에는 맥이 탁 풀렸다.
호랑이 가드가 마지막에 호랑이 새끼 발자국을 발견하고선 알려줬다. 얼마 되지 않은 듯 날카롭게 찍힌 발자국이었다.
호랑이 출몰지역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것은 순한 사슴떼였다.
관광 가이드가 맹그로브 나뭇가지를 조금 잘라 바닥에 깔아줬더니 사슴떼가 긴장하면서 다가왔다.
일본 나라현에서는 사슴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고 시내를 활보하지만, 호랑이가 사는 밀림 속 사슴 떼는 자그만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 멀리 달아났다. 정글이라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방글라데시 다카 트리뷴에 따르면 지난해 순다르반스 지역에 사는 호랑이는 114마리로 증가했다.
3년 전인 2015년 106마리였던 것과 비교하면 8%가량 증가했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벵골호랑이 서식지 1천659㎢에 카메라를 설치해 숫자를 파악하고 있다.
당국은 이 중 63마리가 성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호랑이 가드

밀림 호랑이 투어에는 호랑이 가드(Tiger Guard) 2명이 따라붙었다.
순다르반스에는 밀렵꾼을 감시하고, 호랑이들로부터 관광객을 보호하는 무장 가드가 있다.
그중 젊은 편인 순다르 알리는 올해 쉰 살이다. 그는 현재 30년 가까이 호랑이 가드 일을 해오고 있다. 관광객의 안전을 책임진다.
드물게 호랑이가 관광객 근처까지 오는 경우가 있지만, 관광객을 해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맹수 가운데 하나인 호랑이에 대한 경계는 절대 게을리할 수 없다.
소총을 어깨에 멘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관광객들을 지켰다.
그가 소지했던 소총은 옛 소련의 세르게이 시모노프가 설계한 7.62mm 탄을 쓰는 SKS 소총으로, 분당 30발을 격발할 수 있다. M1보다 더 가벼워 호평을 받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크게 얻은 AK-47의 원형이 됐다.
다행히 한 번도 쓸 일은 없었지만, 호랑이 가드 알리는 실탄을 넣은 호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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