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법 D-208]②을의 비참함

입력 2019-06-22 10:00   수정 2019-06-22 12:26

[김용균법 D-208]②을의 비참함
이준석 태안화력지회장 "갑이었더라면 이런 일 없었을 것"
"조금이라도 나은 현장 물려주고 싶다"

(서울·태안=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오예진 기자 = "을의 비참함. 을의 현실."
작년 12월 11일 새벽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사망 당시 24세)씨의 사망에 대해, 직장 동료였던 이준석(47)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지회장은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게 '갑'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을'이니까 이렇게 됐겠지. 을의 서러움이죠. 그러니까 정규직 시켜 달라고 투쟁하는 거고."

김용균이 엄마와 동료에게 남긴 숙제 / 연합뉴스 (Yonhapnews)



지난 5일 충남 태안군의 한 카페에서 이준석 지회장이 인터뷰에 응할 때 그가 입은 조끼에는 지회장 직함이 새겨진 명찰과 함께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이 지회장은 김용균씨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에서 용균이가 너무 착하고 부지런해서 하지 말아야 할 작업을 했다는 둥 그런 말을 유가족에게 했어요. 그런데 거기는 우리 순찰 코스고, 하던 일이어서 한 건데 거기서 우리 조합원들의 분노가 치솟은 거죠."
차분하던 이 지회장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을의 비참함, 을의 현실이라고 느꼈어요. 원청 소속의 일부 직원 분들은 본인이 시키지 않았다고 하지만, 우리 계약서를 보면 순찰을 어떻게 하고 낙탄(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치우고 그런 게 있는데, 막상 사고가 나니까 '안 가도 되는 곳인데 너무 부지런해서 그렇게 됐다'고 하니까…"
이 지회장은 "차라리 회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하다고 하면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적으로 나왔어야 했다"며 회사측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 '작은 용균' 시신 부모님과 함께 확인
이 지회장은 사고가 나기 전에는 고 김용균씨를 '작은 용균'이라고 불렀다. 이름이 같은 동료 노동자가 같은 사업장에 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용균'을 생전에 딱 네 차례 만났다. 두 차례는 회사에서였고, 나머지 두 번은 술자리에서였다. 이 지회장은 사고 보름 전쯤 집에 직장 동료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서 함께 먹었고, 사고 닷새 전쯤에는 집 근처의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웃고 떠들면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며칠 후 사고가 발생했고, 이 지회장은 '작은 용균'의 부모와 함께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서 싸늘한 동료의 시신을 확인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원래 9개월간 '이름만 올려 놓은' 정도 노릇만 했던 이 지회장이었지만, 김씨 사망을 계기로 진상 규명 촉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일에 앞장서면서 집회와 투쟁을 이끌고 있다.





◇ 원청 정규직이었다가 재입사하니 하청 직원
이 지회장은 직장에서 원청업체 정규직이었다가 재입사한 후 하청업체 직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갑'인 원청과 '을'인 하청의 온도차를 피부로 생생하게 느낀다.
그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에 유망한 직종으로 꼽히던 중장비 기사가 됐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친구의 권유로 한국동서발전 산하 호남화력발전처에 중기 운전원으로 입사했다. 지금과 달리,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넉 달 뒤에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태안사업소로 옮겼고, 중장비로 석탄을 고르고 나르는 일을 했다.
안정된 정규직 노동자의 생활은 2010년 8월 직장을 그만두면서 끝났다. 이 지회장은 서울로 돌아와 아버지의 파지 사업을 도왔지만, 결국 사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안사업소에서 또 중기 운전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본 그는 6년만에 사실상 재입사를 하게 되지만, 신분 변동을 감수해야 했다. 전에 그만둘 때는 원청업체의 정규직 신분이었지만, 6년 뒤엔 한국발전기술이라는 하청 업체에 경력직으로 들어가게 됐다. 3년 후 원청과 회사의 도급 계약이 끝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실상 비정규직' 신세였다. 그래도 하청 업체 안에서는 명목상 정규직 신분이었고, 2017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2주간 휴가를 얻어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할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 "조금이라도 나은 현장 물려줘야"
용균 씨 사망 이후 이 지회장은 진상규명 등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회장직을 계속하면서 계속 투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후임으로 지회장직을 맡아 주겠다는 동료도 있었지만, 지금 물러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태안화력 사업장에는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이 여럿 있고, 그 때문에 산재 판정을 받은 이도 있다.
이 지회장은 "사고 전에는 내 현장에만 신경을 썼고, 내 현장만 안전하고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지금은 이 일을 계기로 해서 후배들만큼은 낙후된 현장이 아닌 조금이라도 우리 때보다 나은 현장을 만들어서 물려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ohye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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