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모든 일에는 처음과 시작이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 시작을 잘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시작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잘 모른다. 굳이 알려 하지도 않는다.
인류 문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두 발로 서서 걷고, 언어를 사용한다. 춤을 추고 돈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직립보행한 사람은 누구인가. 처음으로 말을 내뱉은 사람은 누구인가.
위르겐 카우베의 '모든 시작의 역사'는 인류 문명 성과의 시작을 다룬 책이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 공동발행인이자 여러 권 학술 서적을 펴낸 저술가인 저자는 "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발명자가 없다"는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직립보행, 언어, 춤, 도시, 돈, 종교, 정치적 지배, 서사시의 시작에 대해 모른다.
이는 우리가 무지하거나 유물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별 인간이 그런 것들을 발명했다고 상상할 수 없어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류 문명은 각본에 따라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라 우연과 오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탄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문명의 시작을 단순화해 생각하곤 한다.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두 발로 섰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말하기 시작했으며, 물물교환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돈을 발명했다는 식이다.
저자는 이러한 결정론적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네 발로 움직이던 유인원이 똑바로 서서 걷기까지 수백만년이 걸렸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 네발로 선 누군가를 찾는 게 가능할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역사학과 고고학, 인류학부터 생물학, 언어학, 문학, 철학까지 전방위 지식을 동원해 문명의 시작에 대한 기존 통념에 의문을 표한다.
책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시작'은 직립보행, 익혀 먹기, 말하기, 미술, 종교, 음악, 농업, 도시, 숫자, 돈, 일부일처제 등 16가지 주제다.
바퀴의 발명과 같은 기술적 발명품이 아니라 소통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난 사회적 업적들이다.
오늘날 당연하다고 믿는 시작들이 실은 기나긴 진화를 거쳐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로 수컷 원숭이들이 숲이 아니라 초원에서 먹이를 찾아야 했다.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움직여야 했고, 웅크려 앉아 땅바닥을 뒤질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신체구조가 점차 변했다. 오랜 시간을 거쳐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특히 공동체가 여러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 바탕이 됐음을 보여준다.
소문을 나누면서 언어가 시작되고, 정서를 나누는 데 음악과 춤이 활용됐다. 문자와 종교, 도시와 국가도 모두 공동체 진화 과정과 연결된다.
여러 학문적인 추론과 상상력을 발휘해 문명적 성과의 시작을 탐구하지만, 이 책도 확실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인류 역사 시작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앞으로도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저자는 '시작'이라는 개념의 의미심장함을 이야기한다.
그는 "시작은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며 "진화가 하나의 표본을 놓고, 이것이 한 종의 처음이라고, 또는 이 종의 최후라고 확인해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명의 시작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새로운 것이 그게 하나의 과정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 어떤 문명적 업적도 단 하나의 메커니즘이나 단 한 가지 원인 덕에 생겨나지 않았음을 되새기는 말이다.
시작은 한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영사. 안인희 옮김. 480쪽. 2만1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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