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1972년 뮌헨 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전. 이 경기에서는 엄청난 이변이 일어난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팀 미국이 러시아에 패배한 것이다. 경기 종료 3초 전 심판이 러시아 측 타임아웃 요청을 보지 못해 경기가 재개됐고, 그 3초 동안 러시아가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러시아 영화 '쓰리 세컨즈'는 이 경기를 러시아 국가대표팀 시각에서 다룬다. 뮌헨 올림픽 남자 농구 챔피언 일원인 세르게이 벨로프의 책 '고잉 버티컬'(Going Vertical)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가란진 감독(블라디미르 마시코프 분)이 러시아 농구 국가대표팀을 맡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감독직을 수락한 그는 팀을 맡자마자 "뮌헨 올림픽에서 미국을 꺾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러자 국내 여론은 악화한다. 팀에도 문제는 있다. 각 선수 국적이 달라 단합이 되지 않고 득점은 에이스인 세르게이 벨로프가 도맡아 한다.
가란진 감독은 이런 팀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끌어간다. 미국을 꺾기 위해 선수들을 '미국식'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팀워크가 다져지고 소련팀은 올림픽 우승에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
영화는 상대적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우여곡절 끝에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는 스포츠 영화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진부하고 크게 새롭지 않은 전개다. 위기나 선수 간 갈등도 너무 쉽게 해결된다.
자신도 모르게 소련 팀을 응원하게 되는 경험은 색다르다. 실제 해당 경기 결과는 국제농구연맹(FIBA) 창설자이자 사무총장인 윌리엄 존스가 개입했다는 등의 이유로 논란이 됐다. 미국 팀은 은메달 수상을 거부했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소련팀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만든다. 영화 속 결승전에서 반칙을 일삼고 거칠게 경기하는 것은 소련팀이 아닌 미국팀으로 그려진다.
냉전 시대 이념대결이 한창이었을 당시의 분위기가 영화에도 담겼다. 어느덧 경기는 미국과 소련, 두 국가의 자존심 대결이 되고 소련 정치인들은 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현란하게 펼쳐지는 농구경기 장면이 백미다. 실제 농구 선수들을 캐스팅했으며 이들은 촬영 전 수개월 전부터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이 하는 훈련을 소화했다. 덕분에 대역 없이 모든 경기 장면을 소화할 수 있었다.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슬로 모션도 몰입감을 더한다.
기적적인 승리라는 국민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소재를 사용한 덕분인지 러시아에서는 개봉한 뒤 총 2천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 역사를 새로 썼다.
dy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