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가 사유·의지·판단으로 분석한 정신 활동

입력 2019-06-13 18:10  

아렌트가 사유·의지·판단으로 분석한 정신 활동
'정신의 삶: 사유와 의지'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사유의 부재가 내 관심을 일깨웠다. 멈춰서 사유할 여유를 갖기가 좀처럼 힘든 일상 속에서 사유의 부재는 다반사다. 악행은 관심이나 의지를 특별히 촉발하는 동기가 부재한 상황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유대인 여성 철학자다. 그는 예루살렘 법정에서 진행된 독일 전범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뒤 성격장애자가 아니라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이 악행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악의 평범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 정신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 정신 활동을 깊이 있게 탐구해 '사유의 부재', 즉 무사유가 악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도서출판 푸른숲이 펴낸 신간 '정신의 삶: 사유와 의지'는 아렌트가 정신 활동을 사유, 의지, 판단으로 조명한 책이다. 전통적 서양 정치철학을 비판하면서 사유, 의지, 판단을 개별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저자가 말년에 쓴 글을 모아 사후인 1977년과 1978년에 각각 출간한 '사유'와 '의지'를 한 권에 묶고, '판단' 부분은 강의록을 실었다. 편집은 아렌트 친구인 비평가 메리 매카시가 했다. 국내에서는 '사유' 번역본이 2004년에 나왔으며, '의지'는 초역이다.
아렌트는 사유를 '나와 나 자신의 소리 없는 대화'로 정의하면서 사유 결과는 언어를 매개로 전달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수많은 인간적 실존 문제들의 수수께끼에 관한 최종적인 해답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해답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항상 새롭게 대답하려고 할 때 사유하는 우리가 머무는 장소를 발견한다"고 강조한다.
의지는 욕구와 관련된 정신 활동이다. 저자는 의지를 정신 내면성과 외부세계를 통합하는 능력이자 행위를 촉진하는 근원으로 본다.
그는 사유와 의지의 차이점에 대해 의지는 현상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사유보다 더 많은 자율성이 있다면서 사유가 일반성을 지향한다면 의지는 특수성을 추구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이어 저자는 판단을 오감을 종합하는 또 다른 감각으로 설명한 뒤 "판단은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신비하게 결합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정신이 동일성과 차이가 공존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사유, 의지, 판단을 '신비스러운 하나 속의 셋'으로 표현하면서 정신 활동을 통해서만 정치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역자인 홍원표 한국외대 교수는 '옮긴 이의 말'에서 "사유는 우정을 통해, 의지는 사랑을 통해, 판단은 관심과 배려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며 "다수의 행위자가 자유와 평등에 기초해 활동할 때 공공영역은 자체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진우 포스텍 교수도 한나 아렌트 사상을 소개한 책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를 펴냈다. 이 교수는 '이제 전체주의는 끝났는가', '무엇이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가', '괴물 같은 악을 저지른 자는 왜 괴물이 아닌가' 등 10가지 질문에 답했다.
정신의 삶은 744쪽, 3만9천800원. 휴머니스트가 출간한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는 272쪽, 1만5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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