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논쟁으로 번진 김원봉…"서훈보다 재평가 중요"

입력 2019-06-14 10:46   수정 2019-06-14 13:44

이념논쟁으로 번진 김원봉…"서훈보다 재평가 중요"
서훈 논란 맞물리며 진보·보수 갈려 공방
"독립운동사 전반 인식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한 독립운동가이자 1948년 월북한 북한 정치인인 약산(若山) 김원봉 평가가 갈수록 이념 논쟁 사안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연구가 활발해진 상황에서 올 초 국가보훈처 자문기구가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권고한 뒤 논란이 본격화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한 데 이어 일부 독립운동단체들이 지난 8일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 계획을 공개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이에 청와대는 지난 10일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면 포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들어 김원봉 서훈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하며 서훈 논란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김원웅 광복회장,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각계 원로 18명은 지난 12일 입장문을 통해 "김원봉이 당리당략에 이용되는 현실을 통탄한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보수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문 대통령이 현충일에 한 "광복군에 김원봉이 이끈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민족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고, 광복군 역량은 국군 창설 뿌리가 됐다"는 추념사를 비판한 데 대해 "구태의연한 색깔론 프레임이 다시 등장했다"며 "약산 김원봉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이는 의도가 통탄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누구보다 빛나는 항일 영웅이었다"면서 "남과 북이 모두 역사의 그늘로 밀어낸 약산 김원봉을 양지로 불러내는 것이 평화의 한반도를 향한 도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14일자 신문에서 김원봉이 1938년 창설한 조선의용대 병력 80%가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됐고, 조선의용군이 북한 인민군으로 이어졌다면서 "조선의용대는 북한 인민군 뿌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1948년 신문에서 찾은 "김원봉이 북한에서 국가검열상(국방상)이 됐다"는 기사를 소개하면서 그가 한국전쟁 이전부터 남침 준비에 관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독립운동단체들은 이에 앞서 13일에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을 취소하고 창단 100주년을 맞은 의열단 관련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역사학계에서는 영화 '암살'과 '밀정'에 등장하면서 대중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 김원봉을 향한 시각이 이념에 따라 다르다면서 김원봉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면밀히 파악한 뒤 재평가하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진보 진영과 독립운동단체를 중심으로는 김원봉이 해방 이전에 펼친 독립운동 행적에 초점을 맞추지만, 보수 진영은 김원봉이 북한으로 건너가 내각에 참가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1898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한 김원봉은 사망 연도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1958년 이후 그의 행적에 관한 자료도 없다.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김원봉이 1958년에 숙청돼 그해에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라며 "숙청 사실은 북한 자료에 없고, 러시아 자료에만 1958년 김원봉이 공직에서 물러난 뒤 남한으로 내려가려고 알아보려다 체포됐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는 "김원봉 서훈은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고, 정치적 갈등으로 확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서훈보다는 김원봉이 독립운동 과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국민이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 교수는 "그동안 1930∼1940년대 활동한 수많은 무명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며 "김원봉이라는 특정 인물에 집중하기보다는 독립운동사 전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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