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믿어주고 도와주면 누구나 사회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어"
"지역센터 건립·연구 기능 확보 골자로 한 중장기 발전계획 추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청소년들은 우리가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적절한 지원을 해주면 누구나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재혼으로 중도에 입국한 청소년들은 새로운 가족관계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죠. 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도와야 합니다."
15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만난 이상덕(63)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이사장은 "이주배경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면서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이 책무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힘을 쏟겠다"고 각오를 털어놓았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은 청소년복지지원법에 따라 2006년 정부가 설립한 비영리재단법인.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무지개청소년센터를 운영하며 다문화 청소년, 외국인근로자가정 자녀, 중도입국 청소년, 탈북 청소년,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지닌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 직업훈련, 상담, 멘토링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국회의원 보좌관, 여성의전화 상임부회장과 서울여성의전화 회장, 여성특별위원회 정책조정관, 여성부 차별개선국장, 청와대 여성정책비서관, 한국폴리텍I대학 학장,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 한국폴리텍다솜고등학교 교장, 평택대 교양학부 교수 등 시민단체, 국회, 정부, 학계 등을 두루거쳤다.
지난해 6월 12일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이사회에서 3년 임기의 이사장에 선임됐으며, 여성가족부의 승인을 얻어 6월 15일부터 비상임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우송대 특임교수도 맡고 있다.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와의 인연도 깊어 "여성운동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모시며 도움을 많이 받았고 내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현장과 공직에서 오랫동안 여성정책에 관여하면서 결혼이주여성 등 다문화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2012년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기숙형 기술대안학교 한국폴리텍다솜고등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해 4년간 학생들과 지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취직해 첫 월급을 받은 졸업생들이 후배들에게 줄 선물을 사 들고 학교를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죠.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많이 배웠고 한층 성숙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경험이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을 이끄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직업교육과 심리 상담, 다문화 인식 개선 등에 크게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무지개청소년센터를 거쳐 간 선배 멘토들이 후배를 이끄는 '무지개 디딤돌'과 이주배경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이 한데 어우러지는 '통·통·통 캠프'는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이 이사장이 교장으로 재직했던 한국폴리텍다솜고등학교도 무지개청소년센터 캠프에 참여하는가 하면 상담 교사를 지원받기도 했다.
"소장을 비롯한 무지개청소년센터 상근 직원들의 노력, 협력 기관과 단체들의 헌신, 후원 기업들의 도움 등이 어우러져 지금까지의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여건에서는 무지개청소년센터가 제구실을 충분히 해내기 어렵습니다. 민간 기업의 사회공헌 지원금에 의존하는 사업이 절반을 넘다 보니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거나 분절화하기 쉽고, 지역 전달체계가 확보돼 있지 않아 소외되는 청소년이 많거든요. 또 현장에서 발굴된 정책과제들이 정부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연구 기능과 의견 수렴 기능도 갖춰야 합니다."
이 이사장은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아보고자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부탁해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했으며 재단 이사, 센터 실무자, 지역 전문가가 참여하는 TF를 구성해 발전방안을 만들었다.
지역센터를 신설해 중앙센터와 유기적 연결을 꾀하고 연구 기능을 확보하는 것 등이 골자다. 재단 이사들이 최종 점검하는 단계인데, 여가부와도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재단의 제안이 긍정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법무부 통계로는 1만여 명에 이르고 민간단체에서는 미등록 이주민 자녀를 포함해 2만5천여 명으로 추산합니다. 그나마 제도권 학교의 울타리에 들어와 있는 학생들은 형편이 나은데, '학교밖 청소년'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위해 예산을 더 투입하고 정책적 노력을 펼쳐야 합니다."
지난 4월 여가부가 발표한 2018년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 결과를 보면 3년 전보다 성인의 다문화 수용성은 퇴보한 반면 청소년들의 수치는 개선됐다. 이 이사장은 "혈통 중심의 순혈주의 전통과 가부장적 가족문화의 영향으로 다문화 인식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면서 "그나마 전국의 각급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다문화 감수성 증진 프로그램이나 다문화 이해교육이 청소년들의 인식 개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이사장은 일자리 부족이나 범죄 우려 등을 들며 이주민을 향해 배타적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잘못된 정보에 토대를 둔 편견이라고 잘라 말했다. 더욱이 개인적 불만 등을 사회 문제 탓으로 돌리며 가장 취약한 이주민이나 다문화 자녀를 차별하고 이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일종의 범죄 행위라고 지적했다.
"폴리텍다솜학교 교장 시절 어떤 학생이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 반찬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달걀 음식을 주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 무슬림 학생을 위한 기도실을 마련해주기도 했죠. 흡연에 관해서도 중국이나 베트남은 우리와 문화가 다릅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살고 싶어한다고 해서 영혼까지 한국인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관습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세계시민의 태도가 중요하죠."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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