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1천 명 체포하며 '직선제' 막은 후 행정장관 자리 올라
12일 시위 강경 진압으로 거센 사퇴 요구…친중파 진영도 등 돌려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지난 2014년 '우산 혁명' 시위를 강경 진압하며 홍콩 행정 수반의 자리에 오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이제 시민들의 거센 사퇴 요구를 받는 '풍전등화'의 처지에 몰렸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홍콩판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 등으로 불린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친중국 정책만을 밀어붙이는 그의 성향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지난 2014년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79일 동안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 당시였다.
당시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소수의 선거위원회가 행정장관을 뽑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에서 벗어나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고, 이는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홍콩 시민들은 2014년 9월 28일부터 79일 동안 시위를 벌였고, 당시 일일 최대 시위 참여 인원이 5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정무사장(정무장관)이었던 캐리 람은 홍콩 시민들의 열망을 무시한 채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고, 무려 1천여 명에 달하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했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중국 당국의 마음에 쏙 들었고, 그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그는 30%대 지지율에 그쳐 경쟁자였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재정장관)의 50%에 크게 못 미쳤지만, 자신이 추진한 간접 선거제 덕분에 결국 2017년 3월 행정장관에 선임될 수 있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취임 후 내각을 친중국 인사들로 채웠고, 국가보안법 재추진, 중국 국가(國歌) 모독자를 처벌하는 '국가법' 제정 추진, 반중국 성향의 홍콩민족당 강제 해산 등 친중국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의 거침없는 친중국 행보에 야당과 시민단체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을 계기로 이제 상황은 급반전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범민주 진영의 주장에 홍콩 시민들은 큰 호응을 보냈고, 이는 지난 9일 '100만인 시위'로 표출됐다.
12일에도 홍콩 수만 명이 참여한 입법회 포위 시위가 벌어지고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여론의 거센 비판이 일자 캐리 람 장관은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송환법 추진 연기를 발표해야만 했다.
전날 발표에도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송환법 완전 철회와 캐리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캐리 람 장관이 홍콩 시민들에게 워낙 인기가 없는 탓에 그가 2022년 6월 30일까지로 예정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는 한 홍콩 방송과 인터뷰에서 "자식이 매번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다가는 자식을 망치게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온라인에는 그 가족의 국적 문제를 문제 삼는 글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글은 "캐리 람이 영국 유학 당시 결혼한 영국인 남편은 현재 중국 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두 아들은 영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며 "캐리 람도 영국 국적을 유지하다 2007년에야 이를 포기했으며, 큰아들은 중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퉁치화(董建華) 전 행정장관의 경우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했다가 2003년 7월 1일 50만 홍콩 시민의 반대 시위를 맞아 이를 철회했고, 결국 2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임하고 말았다.
캐리 람 장관의 처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지지 기반인 친중파 진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날 캐리 람 장관과 친중파 의원의 회동에 참석한 한 의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그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쏟아져나왔다"며 "캐리 람은 법안을 강행한 자신의 행동이 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어리석었다고 사과해야 했다"고 전했다.
친중파 진영은 송환법 강행의 여파로 오는 11월 구의회 선거와 내년 9월 입법회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캐리 람 장관의 사퇴가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의 기세를 올릴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중국 중앙정부가 이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국무원 산하 홍콩연락판공실 왕즈민(王志民) 주임은 이날 오전 친중파 의원들을 만나 중앙정부가 캐리 람 장관의 송환법 연기 결정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으로 전해졌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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