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착용시 '신고' 요구 기업도…보험상담원, 물집 잡힌 채 1만보 이상 걸어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에서 여성에게 하이힐이나 펌프스(끈이나 고리가 없는 뒷굽이 높은 구두) 착용을 강요하지 말라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일본 기업의 상당수는 여전히 여직원의 구두착용 관련 규정이나 가이드라인 등의 규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내용은 다르지만 하이힐의 높이까지 시시콜콜 규제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하이힐 등 굽높은 구두를 신지 않을 경우 회사 측에 '신고'하라는 규정을 둔 기업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여성을 중심으로 신발이라는 뜻의 '구쓰(靴)'와 고통이라는 뜻의 '구쓰(苦痛)'가 발음이 같은데 착안,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의 의미를 담은 '#KuToo' 해시태그까지 등장, 불편한 신발착용 강요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네모토 다쿠미(根本匠) 후생노동상은 여성에게 하이힐이나 펌프스 착용을 의무화 하는 기업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사회통념에 비춰 업무상 필요하거나 그에 상당하는 범위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명운동을 계기로 아사히(朝日)신문이 이달 7일부터 13일에 걸쳐 제복을 입고 고객을 대하는 주요 기업 22개사를 대상으로 취재해 14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19개사의 절반 이상이 고객 응대시 구두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규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이나 항공회사의 경우 "힐은 대략 3~5㎝를 권장"(帝國호텔), "힐의 높이는 3~4㎝, 폭은 4㎝ 정도"(일본항공) 등으로 굽높이를 세밀하게 정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같은 접객업계지만 백화점 기업인 미쓰코시이세탄(三越伊勢丹)홀딩스는 "구두에 관한 규정은 없다", 금융기관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구두는 개인의 재량"이라고 답변했다.
운동화 등을 신으려면 회사에 '다른 복장착용 신고'를 하도록 하는 회사도 있었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접객 담당직원과 그렇지 않은 종업원에 대해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회사에서 가정과 기업을 방문하면서 보험계약을 모집하거나 권유하는 상담원으로 일하는 여성(25)은 일정 높이의 힐이나 펌프스를 착용하도록 회사가 규정하고 있으며 힐이 없는 가죽구두나 끈 없는 캐주얼화인 로퍼 등을 신으면 상사에게서 주의를 받는다고 말했다.
힐착용 강요 반대운동인 '#KuToo'에 동조해 발이 아픈 걸 참는다는 의미에서 '오시다리(忍足) 미카'라는 펜 네임으로 SNS에 글을 올린 이 여성은 PC와 자료 등 최대 9㎏이나 되는 가방을 메고 영업대상 가정과 회사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하루 1만보 이상을 걷는 날이 흔하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건 다반사다. 범죄피해나 재해 등 긴급시 하이힐을 신은 채 대처할 수 있을지 늘 불안하다고 한다.
발 여기저기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나거나 통증을 느껴 작년 상사에게 "발이 아프다"고 호소한 끝에 지금은 남성용 가죽구두와 비슷한 검정색 플랫슈즈를 신는다.
하지만 임신중인 동료 여성들도 모두 펌프스를 신고 있어 '차가운 시선'을 느낀다고 털어 놓았다.
오시다리 미카는 "직장에서 (힐 착용에) 동조하라는 압력이 강해 개인이 (반대를) 호소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회사와 국가, 사회전체의 풍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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