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임하은 인턴기자 = 경찰 지구대 담벼락에 대통령 하야를 암시하는 낙서를 한 60대 남성 A씨가 입건되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A씨는 지난 7일 밤 동대구지구대 외벽에 검은색 래커 스프레이로 '문. 하야'(가로 120㎝·세로 60㎝)'라는 낙서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이 소식을 전한 기사의 댓글에는 "표현의 자유도 없는 나라가 되어간다", "좌파가 하면 표현의 자유고, 보수가 하면 잡혀가느냐"는 등의 비판이 잇따랐고,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도 '하야 소리하면 잡혀갈 수 있다?'는 제목으로 해당 기사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도 17일 논평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며 "공포 공안 정국 몰이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검경 수사기관의 과잉 충성이 애처롭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용물건손상죄로 낙서 내용이 아니라 공용물인 경찰서 담벼락를 손상한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됐다. 형법은 '공무소(공무원이 사무를 보는 장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등을 손상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A씨를 조사한 대구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하야라고 쓰든, 욕설을 쓰든 낙서 내용은 관계가 없다"며 "공용물에 낙서했기 때문에 입건된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공용물건손상죄는 손상 행위에 따라 죄의 유무를 판단하도록 돼 있지, 그 (낙서의) 내용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김성규 한국외대 법과대학 교수는 "(공용물건손상죄는) 공용물의 가치가 얼마나 손상됐는지, 그 효용을 따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해당 법은 손상 행위에 초점이 있는 것이며 이는 부수는 것뿐만 아니라 낙서를 비롯해 공용물을 원래 목적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여러 행동이 포함된다"며 "낙서 내용 자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A씨처럼 경찰서 등 관공서에 낙서를 해 공용물건손상죄로 입건되거나 처벌을 받은 사례는 이전에도 여럿 존재한다.
2015년 대구에서 경찰서 지구대 담벼락에 경찰을 비하하는 욕설 낙서를 남긴 20대 2명이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2014년에는 20대 대학생 2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후문 기둥에 '나 니들 시러(싫어)'라고 낙서해 경찰에 넘겨졌다.
2011년에는 경남 사천시 관공서 건물 벽에 상습적으로 '삼천포 사랑', '삼천포를 사랑합시다'란 내용의 낙서를 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입건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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