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1∼2기생 13명 주축…퇴각 않고 적 후방 교란 활약 후 전사
(남양주=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6·25 전쟁 69주기를 앞두고 당시 계급과 군번도 없이 활약해 전공을 세운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가 주목받고 있다.
19일 남양주시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 '6·25 전쟁사' 등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과 함께 북한군이 엄청난 기세로 남하했다.
이에 26일 밤 포천에서 퇴각한 국군 7사단 제9연대는 육군사관학교에 집결했다.
다음날 육군사관학교장의 작전 통제로 사관생도 1∼2기와 9연대는 불암산 주변에 배치됐다.
태릉 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사관생도 1기생들은 임관을 2주일 앞둔 상태였으며 2기생들은 입교한 지 25일밖에 되지 않았다.
의정부와 창동 방어선에서 철수한 부대들은 한강 남쪽으로 이동할 정도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해 6월 28일 이른 아침 북한군은 미아리고개를 거쳐 서울시내로 진입했다.
이때 사관학교 일대에 포탄이 떨어졌고 북한군 대병력이 줄지어 남진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사관학교장은 육군본부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지만 퇴로가 차단되기 전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상당수 사관생도가 이 명령을 받지 못해 철수 시기를 놓쳤다가 가까스로 한강을 넘었다.
그러나 태릉에서는 사관생도 1기 10명과 2기 3명, 9연대 7명 등 20명이 미처 철수하지 못했다.
이들은 불암산 일대에서 암호명 '호랑이'로 유격 활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사관생도들은 계급과 군번이 없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유격대는 29일부터 3개월가량 불암산 일대에서 북한군 후방을 교란했다.
불암산 동굴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사찰인 불암사와 석천암 주지를 비롯해 주민들의 도움도 받았다.
유격대는 총 4차례 공격작전을 시도해 북한군에 큰 피해를 주는 등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7월 11일 북한군을 기습 공격해 30여명을 사살하고 유류 50드럼을 비롯한 보급 물자를 폭파했다. 31일에는 2차 공격을 시도, 북한군 차량을 파괴했다.
8월 15일에는 북한군 훈련소를 기습 공격하고, 9월 21일에는 북쪽으로 끌려가는 주민 100여명을 구출하기도 했다.
일주일 뒤인 9월 28일 국군과 유엔(UN)군은 반격에 나서 드디어 서울을 탈환한다.
그러나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모두 전사한 뒤였다.
유격대로 활동한 생도 1기생은 강원기, 김동원, 김봉교, 박금천, 박인기, 이장관, 전희택, 조영달, 한효준, 홍명집 등 10명이다.
생도 2기생은 이름이 확인되지 않았다.
9연대 장병 역시 김만석 중사를 제외한 6명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는 1996년 이들을 기리고자 불암산에 철판으로 된 안내판에 설치했다.
남양주시는 23년이 지나 안내판이 낡고 녹슬자 나무로 된 새 안내판을 새로 제작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계급과 군번도 없는 사관생도들이 4차례에 걸친 전투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주민 100여명도 구출했다"며 "사관생도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꼭 알아야 하는 역사"라고 밝혔다.
육군사관학교와 남양주시는 19일 불암사 입구에서 호랑이 유격대 새 안내판 제막식을 연다.
k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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