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쟁문학 전문가 정연선 '잊혀진 전쟁의 기억'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여기에서 왜 내가 싸워야 하지?"
6·25 한국전쟁은 미국이 20세기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로 부상한 이후 치른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기억된다.
3년 동안 당사자인 한국군보다 많은 178만 명이 넘게 파병돼 4만 명이 넘는 '귀한 아들'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죽거나 실종됐고, 10만명 이상이 다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은 냉전 시대 자유 진영을 침략하려는 공산 세력을 격퇴하고자 국제연합군이 결의해 치러진 최초의 국제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왜 그렇게 됐을까?
미국 에모리대 출신 미 전쟁문학 전문가인 정연선 육군사관학교 영어과 명예교수의 신간 '잊혀진 전쟁의 기억'(문예출판사)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베트남전 참전 시인 에르하르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정의 구현을 위한 전쟁'이었던 제2차 대전과 '잘못된 전쟁'으로 불린 베트남전 사이에 낀 '샌드위치 전쟁'이다. 그래서 두 전쟁보다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전은 미국 작가들에게도 타이밍과 명분상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전 참전 용사와 가족들은 한국전이 '제한전쟁', '경찰 행동', '국지적 분쟁'으로 불리며 격하되는 것에 분노를 드러낸다. 미군 전사 유해는 발굴될 때마다 최대한 예우를 갖춰 고향으로 송환된다.
이처럼 미국 문학사에서 한국전은 잊힌 전쟁일지 몰라도 여전히 미국인들에게는 '20세기 미국이 개입한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억되고 끊임없이 재평가받는 중이다.
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을 다룬 미국 소설 중 몇몇이 명작으로 추앙받고 유수 문학상을 받는 동안 한국전 소설은 빈곤한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다만 다행인 것은 여전히 한국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창작되며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전을 다룬 미국 소설은 당시 참상과 생존한 병사들의 인식을 증언하는 소중한 매개체로 작용하는 중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전 관련 소설은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100여권가량 나온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한국전 소설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당시 병사들이 도대체 왜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소국에서 피를 흘려야 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전이 과연 미국이 싸울 가치가 있었던 전쟁이었는지에 대해 해답을 내놓으려 애쓴다.
한국전 소설을 보면 당시 '희망 없는 나라'였던 한국과 한국인을 미국인들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도 알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인분 냄새가 진동하고 온갖 질병이 창궐하는 생지옥처럼 묘사된다. 또 모든 전쟁터, 모든 약소국이 그렇듯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여인들이 가득한 나라로 그려진다.
제임스 히키 소설 '눈 속에 핀 국화'에서 한 병사는 한국(코리아)을 성병인 임질(고노리아)과 설사병(다이어리아)에 비유한다.
리처드 샐저 소설 '칼의 노래 한국'에서는 주인공 군의관이 코리아를 '코리어'(Chorea·무도증: 불수의 운동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병)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로 기억한다.
다만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은 한국전을 조금 더 심층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동족상잔을 불러온 이념이란 무엇이며, 이념 대립이 어떻게 인간성 말살을 불러오는지 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에선 전쟁을 경험한 이민 1세대 김은국, 박태영, 최숙렬 등과 전후 세대인 이민 2세대 수전 최, 이창래 등의 작품이 텍스트로 등장한다.
한국전 소설에서만 나타나는 특징도 있다. 1차·2차 세계대전 소설과 베트남전 소설이 반전 메시지에 치중한다면, 한국전 소설은 조금 더 다층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그린다.
어디인지도 모를 장소에서 혹한 속 끝없는 공방이 계속되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은 역설적으로 따뜻한 휴머니즘을 부각하는 소설이 많이 탄생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480쪽. 2만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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