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르파리지앵에 공동서한…"영어의 식민주의로부터 프랑스어 보호하라"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어를 쓰는 25개국 예술가·지식인 100명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영어의 위세에 짓눌리고 있는 프랑스어 보호노력을 배가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영어를 스스럼없이 쓰는 마크롱에게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영어를 쓰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스위스 출신 사회학자 장 지글러, 프랑스 가수 피에르 페레 등 불어권 25개국 예술가·지식인 100명은 지난 16일자 일간 르 파리지앵에 일종의 '프랑스어 사수 결의문'으로 봐도 무방한 공개서한을 게재했다.
이들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낸 이 서한에서 "프랑스어가 영어에 질식돼 위태롭다. 영어가 너무나 일반화되면서 프랑스어가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6월 18일 샤를 드골 장군의 나치 독일에 대한 항전연설 79주년을 앞두고 공동서한을 쓴 이들은 마크롱에게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따르고 프랑스어를 영어의 식민주의로부터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공개석상에서 영어를 곧잘 쓰는 마크롱에게 "모범을 보이라"면서 "외국에서는 물론 프랑스 국내에서도 잘 어울리지 않는 영어 사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이 눈길을 끈다.
정계 입문 전 글로벌 기업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하면서 영어를 갈고 닦은 마크롱은 그동안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국내에서 영어권 화자들과 대화를 할 일이 있으면 공개석상에서도 스스럼없이 영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모국어에 대해 자부심이 매우 강한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언론이나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영어를 쓰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100명의 예술가·지식인들은 또한 "영어 제2의 공용화론도 거부한다"면서 "중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도입하려는 불경한 계획을 당장 멈추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프랑스 정부는 마크롱 대통령 집권 이후 기업과 인재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영어학습 장려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작년에는 총리가 고교생과 대학생들의 국제공인 영어시험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국제금융사들을 파리로 유치하고자 영어로 금융분쟁을 다루는 특별법원 설치, 파리에 영어로 운영하는 국제고교 세 곳 개교 등의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러나 프랑스어 보호라는 과제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마크롱은 작년 3월 20일 국제 프랑코포니(불어사용권)의 날에는 외국의 프랑스학교 설립 확대와 유럽연합 관리들에 대한 불어강습 확대 등 불어 진흥 30개 대책을 발표했고, 그전에는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 2016년 공쿠르상을 받은 여성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를 임명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프랑스어 진흥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영어가 이미 국제어의 지위를 굳힌 이상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이런 마크롱의 입장에 대해서도 100명의 예술가·지식인들은 프랑스어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작년 10월 프랑코포니 정상회담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실용어인 영어와 '창조의 언어'인 불어를 대비한 것을 거론하며 "이는 세계 공용어로서의 영어의 위상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아프리카의 불어사용권과 캐나다 퀘벡의 활발한 경제를 고려하면 실용어로서의 불어의 가치가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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