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 투쟁의 역사 잘 알고 있어…촛불집회 대단히 인상적"
홍콩 집회에서 "한국 촛불시위 배워야" 목소리도 나와
"시위대 '폭도' 규정한 캐리 람, 행정장관 자격 없어…퇴진해야"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한국의 오랜 민주화 투쟁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를 이뤄낸 한국의 촛불집회처럼 홍콩인들도 캐리 람의 퇴진을 끌어낼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18일 저녁 홍콩 애드머럴티 지역에 있는 정부청사 인근 집회에서 만난 '우산 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黃之鋒)은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퇴진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조슈아 웡은 2014년 79일 동안 대규모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 혁명'의 주역이었다. 우산 혁명은 당시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등을 막아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당시 17세의 나이에 하루 최대 50만 명이 참여한 이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조슈아 웡은 "한국은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간 정부와 직선제를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도심 집회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촛불시위는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많은 홍콩인은 홍콩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 '택시운전사', '변호인', '1987'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난 14일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어머니들의 촛불집회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한 홍콩인의 기타 연주와 함께 울려 퍼지기도 했다.
조슈아 웡은 "한국인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처럼 홍콩인들도 캐리 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통해 민의와 분노를 표출할 것"이라며 "캐리 람이 물러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특히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 등을 동원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80여 명의 시위대가 다친 지난 12일 시위 직후 캐리 람 장관이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의 선동"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조슈아 웡은 "평화로운 시위를 벌인 시민들을 '폭도'라고 부르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캐리 람은 단지 '미안하다'고 말할 뿐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캐리 람 행정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홍콩 시민들에게 가장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시위 참여자들 특히 젊은 학생들을 폭도로 부르거나 여긴 적이 없다"고 말해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발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슈아 웡은 "더욱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며 "특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 전에 더 많은 시위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 열리는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때는 무역전쟁을 해소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시위를 거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참여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는 분위기이다.
지난 9일 열린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했는데, 일주일 후인 16일 시위에는 무려 2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이므로, 홍콩 시민 10명 중 3명이 참여한 셈이다.
다만 투쟁의 열기를 어떻게 끝까지 이어가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과 송환법 완전 철폐를 이뤄낼지에 대해서는 시위 지도부도 고심하는 모습이다.
이에 2016년 10월 29일부터 20주 동안 매주 열린 촛불집회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를 끌어낸 한국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홍콩 시민은 도심 집회 발언에서 "향후 투쟁의 동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벌어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에서 배워야 한다"며 "시민들의 생활에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휴일에 집회를 열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슈아 웡은 "정권 교체를 끌어낸 한국의 경험은 홍콩 시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며 "캐리 람 장관을 퇴진시키고 자유로운 선거 제도를 도입할 때까지 홍콩인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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