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소강국면 고려…"남한 항구서 WFP에 인계해 北에 전달"
WFP 분배·모니터링 시스템도 강점…"쌀 보관기관 짧아 '전용'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정빛나 기자 = 대북식량지원 방식을 고심해온 정부가 국내산 쌀을 북한에 직접 전달하는 대신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는 나름 여러 측면을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정부는 19일 "정부는 북한의 식량상황을 고려하여 그간 세계식량계획(WFP)과 긴밀히 협의한 결과, 우선 국내산 쌀 5만t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과거 옥수수, 밀가루 등을 WFP를 거쳐 북한에 지원한 적이 있지만, 국내산 쌀을 간접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방식을 최종 선택한 것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 소강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북측과 직접 소통 필요성에 따른 부담이 고려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당국 간 협의가 필요한 직접 지원 방식과 달리 간접지원 방식은 WFP와의 실무적 협의 절차만 거쳐도 북측에 쌀을 전달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WFP와 유니세프의 북한 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한 것과 비슷한 성격이다.
지난달 북측이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하면서 대북 식량 지원 관련 부정적 여론이 있는 등의 상황에서 WFP가 요청한 대북 지원 동참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정부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쌀 지원이 "북한 '당국'에 대한 지원이 아니며, 일상의 삶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점도 현실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쌀 전달 경로와 관련 "남한 항구에서 WFP에 인계하면 WFP가 주도적으로 북한에 대한 운송을 책임지는 방식(FOB)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직접 지원 시에는 수송과정에서 선박과 선박보험사 등이 유엔 제재면제 절차를 일일이 밟아야 하지만, WFP의 경우 이미 북한에서 인도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제재면제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신속하고 수월하게 실무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WFP가 북한에서 장기간 구축한 분배·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투명성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WFP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모니터링 활동을 해 왔으며, 현재 WFP 사무소에 직원 50여명이 근무하며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직접 분배 및 모니터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WFP가) '노 액세스-노 푸드'(No access-No food) 원칙에 따라, 모니터링 요원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만 지원 물품을 분배"한다며 "지원 물품이 북한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수혜자에게 전달되는 시점까지 전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관 중인 조곡(벼)을 보관기간이 짧은 정곡(쌀) 형태로 가공하여 지원하고, 지원 식량의 포대에 '대한민국'을 명기하는 등 전용 우려를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쌀은 저장기간이 최장 6개월 내외(하절기 3개월)로, 장기간 저장이 필요한 군량미 등으로 활용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곧 국내산 쌀 구입을 위한 내부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남북협력기금을 지출하려면 각 부처 차관급 공무원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이하 교추협)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올해 남북협력기금에는 대북 '구호지원사업'으로 608억원이 배정돼 있으며, 이 중 국제시세를 기준으로 5만t에 대한 기금이 지출될 전망이다.
국제시세와 국내산 쌀 가격과의 차액은 별도의 양곡관리 특별회계에서 충당될 것으로 알려졌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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