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주제강연…"인간 내면 끝까지 들어갈 수 있는 매체는 문학"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증강현실 시대라고 해도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결국 인간의 내면 끝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매체는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한강은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문학이란 영원히 새로운 것을 다루기 때문에 결국 새롭게 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출현(Arrival)'이다. 한강은 이날 '영원히 새롭게 출현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종이책과 문학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강연장에는 도서전을 찾은 관객 수백명이 몰려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강은 "요즘 가장 뜨거운 매체인 유튜브가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런 매체가 어디까지 깊게 들어가 볼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동영상이나 전자책과 구별되는 종이책의 가치를 설명했다.
작가는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 사랑, 슬픔 등은 우리에게 영원히 새로운 주제여서 문학이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으며, 종이책도 그러리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책을 읽으면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며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희미해지고 부서지는 듯하다"며 "그럴 때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좀 충전되고 씩씩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언젠가 나를 만들어줬고 살게 해준 책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한강은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으로부터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 '미래도서관 숲'에서 한 세기 뒤에 출간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재단 측에 전달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참여 작가이며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이다.
한강의 소설은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라는 제목 외에는 모두 비밀로 돼 있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프로젝트 자체가 우리 모두 죽어 사라질 100년 후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기도 같았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글을 썼다"고 말했다.
한강은 '눈'을 주제로 3편의 중편을 묶은 3부작 형태의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작가는 "5월에 여러 일로 여행을 많이 했는데, 올여름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글만 써서 책을 완성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글이 잘 안 써져 행복한 상태는 아니지만, 삶이 힘들 때 내게 언어가 있고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설 쓰기는 아주아주 좁은, 실처럼 가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진실하지 않고 상투적이게 된다"며 "때로는 길이 끊어졌다고 생각돼도 그 좁은 길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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