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사 고위직 미끼로 매수…공범인 변호사 친구와 대포폰 만들어 통화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니콜라 사르코지(64) 전 프랑스 대통령이 판사를 매수해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혐의로 끝내 법정에 서게 됐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공영 AFP통신과 일간 르 몽드에 따르면, 파기법원은 사르코지 측이 사법방해 혐의에 대한 예심재판부의 기소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신청을 전날 기각하고 사건을 원심인 파리형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사르코지는 자신이 매수한 의혹을 받는 전 파기법원 판사 질베르 아지베르, 친구이자 변호사인 티에리 헤르조그와 함께 사법방해 혐의로 형사 법정에 서게 됐다.
사르코지는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재판인 이른바 '베탕쿠르 사건' 심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향후 대선 당선 시 모종의 자리를 약속한다는 조건으로 아지베르 판사를 매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르코지가 제안한 자리는 프랑스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웃 나라인 모나코공국의 고위 사법 관련 직책이었다.
아지베르는 당시 파기법원(Cour de Cassation)의 판사였는데, 이 법원은 한국으로 치면 대법원에 해당하는 프랑스 최고 재판소다.
수사 주체인 프랑스 경제범죄전담검찰(PNF)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파기법원에 올라온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재판과 관련한 정보를 얻는 대가로 아지베르 판사에게 고위직을 보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르코지는 베탕쿠르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압수한 자신의 수첩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을 파기법원의 아지베르 판사를 통해 계속 주장하는 등 사법방해 공작을 편 것으로 조사됐다.
그 덕분인지 화장품기업 로레알의 상속녀인 릴리안 베탕쿠르(2017년 95세로 별세)로부터 2007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르코지의 최측근은 재판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르코지는 이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이자 변호인인 티에리 헤르조그를 아지베르 판사와 비밀리에 연락하는 중간 연락책으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는 자신이 수사망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폴 비스무스'라는 가명으로 대포폰(차명 전화기)까지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사르코지의 판사매수 혐의는 2014년 프랑스 사정당국의 감청을 통해 처음으로 포착됐다.
경찰은 당시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베탕쿠르로부터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 헤르조그 변호사와 아지베르 판사의 통화를 감청하는 등 비밀수사를 벌여왔다.
사르코지는 1958년 출범한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두 번째로 형사 법정에 출석하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지난 2011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자신이 파리 시장으로 재임할 때의 공금유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사르코지는 이번 사건 외에도 여러 건의 부패 혐의를 받아 재판에 나가야 하는 처지다.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법정 한도인 2천250만 유로(290억원 상당)의 갑절에 가까운 4천300만 유로(560억원 상당)의 대선자금을 영수증 위조 등의 방법을 통해 불법 조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혐의에 대해 예심재판부가 기소를 결정하자 사르코지는 이에 불복, 상소를 제기했지만 지난달 17일 기각됐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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