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포스트 아파트' 리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서열이다. 어제 부동산 가격 폭등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내일은 대출을 일으켜 성공한 자를 흉내 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두산아트센터가 올해 두산인문극장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로 선택한 공연 '포스트 아파트'(POST APT)는 아파트가 한국인 절반이 살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착안했다. 인구는 줄어들고 가구 형태는 다양해지는데 3∼4인 가구에 최적화한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연은 시작부터 아파트 역사를 와르르 쏟아놓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0년대 지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다. 변소가 처음으로 집안으로 들어온 건 1958년 성북구 종암아파트였으며, 1962년 마포구 마포아파트는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 작품을 본떠 단지형으로 건설됐다. 1975년 지은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밋밋한 외벽에 '기업' 브랜드를 박은 첫 사례다.
여섯 배우는 이런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몸짓과 소리로 표현한다. 한정된 공간을 쳇바퀴 돌고, 잠들고, 먹고,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쿵쿵거리지 마세요"라고 항의한다. 동요 '아파트마을'과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번갈아 부르기도 한다.
보험판매인이 '고독사 보험' 가입을 권하는 장면은 주민의 죽음을 이웃들이 몇달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도시 괴담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와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본뜬 장면은 개발독재, 토지공개념 등 '집'을 둘러싼 여러 담론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형식은 실험적이다. 건축가 정이삭이 창조한 공간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다.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는 신(神)이 아니라 오브제의 하나로 작동한다. 공연의 몇몇 장면은 극장이 아닌 외부 공간에서 촬영된 영상을 틀어주는 식으로 전개한다. 배우들이 관객과 뒤섞여 자신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파트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일관된 스토리텔링 없이 풀어놓는 탓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평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배우를 다른 배우들이 붙잡아주는 장면에서야, 어렴풋이 재개발로 떠밀려 난 사람을 품는 연대를 감지하게 된다.
정영두 연출은 "'포스트 아파트'는 집과 이웃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공간, 영상, 조명, 퍼포먼스로 풀어본 작품"이라며 "아파트가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 없이 각자의 답을 찾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달 6일까지 공연.
cla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