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구멍 뚫어 돌조각 먹고 모래 배설하는 민물조개

입력 2019-06-20 11:15  

바위에 구멍 뚫어 돌조각 먹고 모래 배설하는 민물조개
미연구팀, 필리핀 아바탄강서 바위 먹는 리토레도 확인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강 바닥의 바위에 굴을 뚫고 들어가며 갉아낸 돌 조각을 먹고 모래를 배설하는 민물 조개류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미국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학과 과학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이 대학 해양생물학자 루벤 쉽웨이 박사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필리핀 보홀섬 아바탄강에서 발견된 특이한 민물조개의 생태에 관한 연구결과를 '영국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최신호에 실었다.
연구팀은 벌레처럼 생긴 이 민물조개에 '리토레도 아바타니카(Lithoredo abatanica)'라는 학명을 붙였다. 라틴어로 바위를 뜻하는 '리토(litho)'에다 '배좀벌레(teredo)'의 뒷 두 음절을 합성해 만들었다.
배좀벌레(shipworm)는 바닷물에 사는 조개류로 배 바닥에 달라붙어 나무를 갉아먹어 목선에는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위협적 존재였다. 배좀벌레라는 이름도 이런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리토레도도 껍질이 두 개인 쌍각류 조개로 배좀벌레와 비슷하지만 나무대신 돌을 갉아먹는 등 새로운 속(屬)으로 다뤄야 할 만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배좀벌레류는 손가락 굵기로 홀쭉하고 크기도 작지만 리토레도는 통통한 편이며 반투명한 몸을 갖고있고 최대 1m까지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좀벌레는 드릴 역할을 하는 이중 껍질에 수백개의 보이지 않은 작은 이빨을 갖고있지만 리토레도는 밀리미터 크기 이빨 수십 개를 갖고 바위에 굴을 뚫는다.
배좀벌레가 맹장을 이용해 나무를 소화하지만 리토레도는 이 기관이 아예 없다. 대신 장에는 돌 조각이 가득 차 있으며 화학적으로 굴을 뚫어놓은 바위와 같은 성분을 나타냈다.
연구팀은 리토레도가 돌을 먹고 어떤 영양분을 얻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돌조각들이 새의 모래주머니처럼 플랑크톤이나 다른 먹이를 잘게 빻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지적했다.
리토레도의 아가미는 다른 배좀벌레보다 훨씬 크며 이곳에 공생하는 작은 미생물이 돌을 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을 수도 있어 이에 따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현지 주민의 제보를 받고 현장탐사에 나섰으며, 강바닥의 사암(沙岩)에 무수한 구멍이 나있고 일부 구멍에서 리토레도가 배설기관을 밖으로 내놓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현지 주민들은 리토레도를 '안팅가우(antinaw)'로 부르며 수유를 촉진하기 위한 음식으로 산모들에게 먹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팀은 리토레도가 발견된 곳은 지구상에서 아바탄강이 유일하다면서 리토레도가 석회암에 굴을 뚫어놓음으로써 강의 물줄기를 바꾸고 게나 물고기 등 다른 수중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등 강의 생태계에서 엔지니어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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