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살인과 치밀한 은폐"…유엔보고서상 카슈끄지 피살 순간

입력 2019-06-20 15:39  

"잔혹한 살인과 치밀한 은폐"…유엔보고서상 카슈끄지 피살 순간
101쪽 보고서…'제물용 동물'로 칭하고 "관절들은 분리될 것" 언급도
사우디 왕세자 책임론 재부상…NYT "트럼프에게 새 과제" 전망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뒤에는 잔혹한 살인과 광범위하고 치밀한 은폐,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의 승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유엔의 보고서가 나왔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의 위임으로 지난 1월부터 조사를 벌여온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특별보고관은 19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카슈끄지 살해 순간을 상세히 공개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학자 겸 인권옹호가인 칼라마르 특별보고관은 터키 정보기관이 도청한 음성 자료와 터키 측 인사 인터뷰,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사우디 쪽에 조사 목적으로 방문 의사를 전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101쪽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 당일인 지난해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 2층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는 법의학자와 정보 및 보안 관계자들,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대리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표적을 기다리는 동안, 한 사람이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었고, 법의학자로부터 "쉬운 일"이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터키 측이 도청한 것이 분명한 녹음에 따르면 법의학자는 "관절들이 분리될 것이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시신을 분리해 비닐봉지에 싸 처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정보 관리는 카슈끄지를 '제물로 바칠 동물'(sacrificial animal)로 칭하며 그가 언제 영사관에 올지를 물었고, "그가 도착했다"는 음성 응답을 들었다. 녹음 상으로 카슈끄지라는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약 2분 후 카슈끄지는 결혼 서류를 얻을 목적으로 영사관으로 들어섰고, 총영사실로 안내됐다.
그 자리에서 사우디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말을 들은 카슈끄지는 "밖에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총영사관 방문 사실을) 알렸고,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상대는 카슈끄지에게 "그만하자"며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라고 요구했고, 카슈끄지가 순순히 응하지 않자 재촉하기도 했다.
수분 뒤 상대는 평정심을 잃고는 주사기를 꺼내 들었고, 약물을 주입하려는 것이냐는 카슈끄지의 물음에 "마취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곧이어 다투는 것과 함께 심하게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결국 톱질 소리마저 들렸다.



이처럼 시시각각 벌어진 내용은 초법적이고 약식이며, 자의적인 처형과 관련해 보고서에 나온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또 총영사관의 방을 깨끗이 치우고 화덕에서 불을 피우는 등으로 증거 인멸 작업이 벌어지면서 수사 방해가 이뤄졌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이 보고서는 오는 24일 열리는 UNHRC 회의에 제출될 예정이다.
칼라마르 특별보고관은 카슈끄지의 살해 책임을 사우디 쪽으로 돌리고 "사우디 왕세자의 책임과 관련해 충분히 신뢰할만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사안을 사우디 국내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며 사우디의 비공개 재판 중단과 국제사회의 수사를 요구했다. 카슈끄지가 미국 거주자였던 만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유엔과 함께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보고서가 빈 살만 왕세자를 옹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우디 측은 보고서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사우디의 아델 알주바이르 외무담당 국무장관은 "이미 나온 언론 보도를 재탕했을 뿐 새로울 게 없다"며 "신뢰성이 의심되는 명백한 모순들과 근거 없는 주장 투성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에 거주하며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카슈끄지는 작년 10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살해됐다. 아직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cool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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