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만 알고 국민은 모르고'…北목선 남하에 위기관리는 없었다(종합)

입력 2019-06-21 18:16  

'정부만 알고 국민은 모르고'…北목선 남하에 위기관리는 없었다(종합)
정부, 총체적 부실대응…위기관리센터는 보고만 받고 수습은 없어
軍, '경계작전' 해명에만 초점…은폐·축소 논란만 키워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북한 주민 4명이 탄 소형 목선 한 척이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다.
이 목선이 군의 '삼중 감시망'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삼척항에 접안하고, 북한 선원들이 내려 남쪽 주민과 스스럼 없이 접촉한 상황에서도 정확한 정보가 국민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상황이 빚어진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군 당국은 '경계작전 실패'를 자인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이 축소·은폐 의혹까지 번지면서 논란은 오히려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특히 청와대 등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반적인 국가위기관리 대응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주민 4명을 태운 북한 목선 한 척이 지난 15일 6시 50분께 동해상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한 언론에 보도된 이후 개별 언론사의 취재를 통해 전파됐다.
사실 이때만 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 목선이 표류하다가 동해 해상에서 발견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관계 당국은 합동신문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고기잡이철 노후한 북한 어선의 월선 정도로 추정됐다.
그러다가 "해상 경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언론을 통해 제기된 뒤에야 군당국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합참 측은 지난 17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경 북한 소형선박 1척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경위를 조사했다"며 "조사결과, 전반적인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만 소형목선은 일부 탐지가 제한되는 점을 확인했고 보완대책을 강구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군은 같은 날 진행된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선박의 높이가 파고보다 낮아 레이더 감시 요원들이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인식했다"며 경계실패에 대한 기술적 해명을 하는 데만 집중했다.
당시 군 당국자는 "해안감시전력이 당시 목선의 크기, 파도, 속도, 레이더의
조사 방향 등의 영향으로 인해 근무요원들이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 파도가 1.5∼2m로 일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설명도 했다.


그러나 이 북한 목선이 삼척항 부두에 접안했고, 북한 선원이 삼척항 주민과 접촉해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이번 사건은 '경계작전 실패'를 넘어 은폐·축소 의혹으로 번졌다.
군 당국은 이에 대해 "북한 선박과 어민들에 대한 조사는 관계기관 합동신문이 이뤄지고 있어 군은 경계작전 부분에 초점을 맞춰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군 당국자는 "(당시)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죄송하다"고 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이번 사안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청와대, 합참 등은 (북한 선박이 진입한 6월15일) 해경으로부터 최초 보고를 받았다"며 "그리고 당일 여러 정보를 취합해 해경이 보도자료를 내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해경의 이 보도자료는 '북한 어선이 조업 중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자체 수리해 삼척항으로 와 오전 6시 50분 발견돼 조사 중'이라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뒤늦은 설명은 오히려 현 정부 위기관리시스템의 오작동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낳는다.
사건 초기부터 군 당국과 해경 등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상황 정보를 갖고 있었다면 이를 총괄적으로 판단하고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예상 가능한 국민의 불안감을 최소화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해경 상황센터의 지난 15일 대외비 보고서에 따르면, 해경은 삼척항에서 북한 목선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접수한 직후 곧바로 그 내용을 청와대와 총리실, 국정원, 통일부, 합동참모본부, 해군작전사령부에 전파했다.
이 보고서에는 '삼척항 방파제에 4명이 승선한 미상의 어선이 들어와 있는데 신고자가 선원에게 물어보니 북한에서 왔다고 말했다'는 신고 접수 내용과 삼척파출소에서 파악한 입항 경위가 상세히 서술돼있다.

특히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이번 사건의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던 만큼
전체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기능이 작동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관리센터가 언론 보도까지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국민들이 가지는 불안감도 위기관리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상황을 정확히 장악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기능의 부재는 큰 문제인 셈이다.
지난 17일 국방부 기자실에서 진행된 국방부 익명 브리핑 현장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의 부실한 해명은 이어졌고 사태는 악화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A행정관이 당시 브리핑 현장에 있었다"며 "(북한어선 사태 이후) 17∼19일 사이 2∼3번 정도 국방부를 찾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허위·은폐 논란으로 불거진 지난 17일 국방부 측의 상황 설명은 청와대 측의 의중이 반영됐거나, 아니면 군 당국이 남북문제와 관련해 '신중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청와대 측 기류를 의식한 결과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1일 북한 목선 관련 논란에 대해 "17일 군 당국에서는 자신들이 계획된 작전활동을 했고 이와 관련한 잘못은 없다고 했는데, 안이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발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쪽 인원) 4명이 넘어왔을 때 사실은 그런 보도가 나가선 안 됐다. 만일 그분들이 다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그게 보도됨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된다"며 "북에서 어선을 통해서든 남쪽으로 오면 발표를 최대한 합심(합동심문)기간이 끝날 때까지 (발표를) 안 한다. 근데 사고가 생겼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 방향 등에 대해 "큰 틀에서는 (청와대 등과) 공유를 한다"면서도 북한 어선의 삼척항 진입 등 전체적인 상황을 언론에 설명하지 않은 것은 자체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j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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