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영광' 되찾는 핫플레이스…청년 점포 속속 입점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춘천 도심 한복판이면서도 쇠락하던 육림고개가 아날로그 향수와 트렌디한 감성이 어우러진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춘천의 대표 재래시장 육림고개에 들어섰던 오래된 건물 사이사이 젊은 색채가 더해진 청년상인 점포가 이색적인 복고풍을 연출한다.
춘천 토박이라면 누구나 기억의 나이테에 들어 있을 육림고개.
좁은 오르막길은 한때 이 도시의 대표 골목 시장이었다.
평소 가장 많은 인파로 붐비는 명동거리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목 좋은 중심 상권으로 호황을 누렸다.
육림고개라는 명칭은 현재는 문을 닫은 '육림극장'에 당시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거기서 따왔다.
이 거리는 1980년 후반까지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에서 옷, 신발, 과일, 생선까지 온갖 것을 다 파는 노포들이 길 양편으로 이어지며 손님을 불러들였다.
고갯마루 주변에 인파가 끊이지 않던 탓에 당시 육림고개 상권은 지역 경기를 읽는 잣대였다.
노점상까지 자릿세를 내고 모여들면서 발 디딜 틈 없이 점포가 늘어나 당시에는 현재(70여곳)보다 3배는 족히 넘게 상가촌을 이뤘다는 게 백발 상인들 기억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신도심 개발과 대형마트 입점, 소비 트렌드 변화 등으로 하나둘 점포 셔터가 닫혔다.
설상가상 멀티플렉스 상영관 공세로 극장까지 문을 닫으면서 상권이 급속하게 쪼그라들었다.
청춘을 바쳐왔던 일부 점포만 자리를 지켰다.
침체 터널은 길었다.
육림고개는 한때 49개 점포 중 빈 점포가 37곳에 이를 정도로 몰락 위기까지 내몰렸다.
휑뎅그렁한 거리, 페인트가 바래고 들뜬 회색 풍경, 점포의 찢긴 천막만 펄럭이는 잊혀진 거리가 돼갔다.
이처럼 깊어가는 상권 붕괴의 위기 속에서 반전 모색은 4년 전부터다.
2015년 막걸리촌 특화거리 조성이 그 기점이었다. 그 이듬해인 2016년엔 육림고개 상인 창업지원사업을 벌였다.
춘천시와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 육림고개를 추억하는 옛 아날로그 감성은 살리고, 트랜디한 젊은 기운을 불어넣기로 했다.
막걸리 한잔에 고된 일과를 위로받는 기성세대의 향수, 낭만에다 참신 발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탠 것이다.
2017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 공모를 통한 청년몰 조성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를 통해 2년간 청년몰 20여곳에 15억원을 투입해 창업교육과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컨설팅을 지원했다.
청춘 열정을 쏟아낸 젊은 상인들이 텅 비어 스산하기만 했던 골목길에 하나둘 입점했다.
후미진 시장 골목, 잊혀졌던 육림고개는 그렇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 외벽이 빨주노초로 채색되고, 녹슨 철근이 드러나던 옥상엔 전망 좋은 커피숍 등이 밤까지 불을 밝혔다.
평범한 식빵에 형형색색 천연재료를 담아낸 상점을 비롯해 직접 수확한 농산물과 유기농 재료로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식당이 골목의 풍미를 더 했다.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저마다 톡톡 튀는 개성과 맛을 자랑하는 점포가 자연스레 입소문을 탔다.
춘천시가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한 육림고개 상권분석에 따르면 이 일대 유동인구 평균이 하루 1천7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가게도 청년점포 27곳 등 모두 70여개가 형성됐다.
수공예품 등 맛집이 어우러지는 플리마켓을 통해 시장 기능에 윤활유를 더했고, 주말이면 인파로 붐비는 명동거리와 맞물려 골목골목 활기를 되찾았다.
춘천시는 골목페스티벌을 비롯해 '11월의 미리 크리스마스' 등 이색적인 행사를 통해 활성화를 도왔다.
젊은 층을 겨냥한 취향과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를 공략한 다양한 아이템에 수십년간 제자리를 지켜온 올챙이 국수집 등 노포들의 아날로그 향수가 더해졌다.
춘천시는 청년 점포의 경우 일부 상점 하루 매출액(지난해 말 기준)이 많게는 80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세대 청년상인 권모(41) 씨는 최근의 상권 부활에 대해 "직접 찾아 체험하고 맛보면서 새로운 육림고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림고개는 올해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주관한 청년몰 활성화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춘천시는 국비와 지방비 등 총 3억원을 투입해 새로운 캐릭터와 메뉴, 공동상품 개발, 화재 알림 서비스, 골목축제 개최 등을 벌인다.
또 육림고개 청년상인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주차시설 확충, 상인 커뮤니티 구축, 고객편의시설 조성 등도 진행한다.
청년몰 활성화사업단도 구성해 연말까지 홍보마케팅 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이 일대(약사명동)에서 추진 중인 도시재생뉴딜사업과도 연계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주변의 춘천교육지원청 이전을 통해 마을복합커뮤니티센터, 청년활동 및 사회적경제 인큐베이팅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김정찬 육림고개상점가상인회장은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는 만큼 교통 병목을 해소하고 기존 상인과 젊은 상인들 간 상생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춘천시 관계자는 "아날로그와 빈티지 등 감성골목을 테마로 한 관광형 시장으로 꾸려 명동 일대와 연계한 명소가 될 것"이라며 "육림고개가 옛 명성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h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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