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5년 원주 법천사에 건립된 승탑…1911년 일본인이 무단 반출
10차례 전전하며 수난…2016년부터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해체·보수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문화재계 관심사 중 하나였던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보존처리 후 행방이 '귀향'으로 결론났다.
지광국사탑이 지난 110년간 제자리를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겪은 수난은 바람 잘 날 없었던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고려시대 '국사'(國師) 법계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67) 사리를 모신 승탑(僧塔)인 지광국사탑은 1085년(선종 2년) 지금의 강원도 원주 부론면 법천사지에 조성됐다.
당대 승탑 중 최고로 꼽히는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문화재 수탈에 혈안이 된 일본인 손에 해체되면서 본격적인 수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해 서울 명동의 무라카미 병원으로 옮겨진 탑은 이듬해 서울 중구 남창동의 와다 저택 정원으로 또 이건됐다가, 같은해 5월 아예 일본 오사카로 반출됐다.
탑은 조선총독부 반환 요청으로 그해 겨울 고국에 돌아왔지만, 원래 있던 법천사지가 아니라 경복궁에 놓였다.
조선물산공진회장 평면도(1916), 총독부박물관 배치도(1926) 등을 보면 탑이 경복궁 안에서도 계속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1915년 경복궁 내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 앞 정원, 경회루 동편 근정문 부근을 거쳐 1932년에는 해체돼 동편 사정전과 아미산 사이에 재건립됐다.
탑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크게 파손됐지만, 1957년 치밀한 고증 없이 급하게 복원됐다. 이후 1990년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뒤뜰로 이전해 2015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시간만큼 상처를 많이 입은 탑은 현재 대전 유성구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해체돼 각종 보수를 받고 있다. 연구소는 해체 부재들을 기록하고,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파손된 부재를 접착하고, 결실된 부재들은 새 돌로 제작 중이다.
현재 절터에는 100년 전 탑과 이별한 탑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탑과 탑비는 보호각과 전시관 중 보존 방식이 확정돼 설치된 이후에 재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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