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촉발' 최영미, 6년만에 시집 출간…"시 잊고 살았다"(종합)

입력 2019-06-21 15:03  

'미투 촉발' 최영미, 6년만에 시집 출간…"시 잊고 살았다"(종합)
"이렇게 고생해서 낸 책 처음…소송 중이라 재판에 영향 줄까 조심"
고은 성추행 의혹 고발한 '괴물' 등 페미니즘 시 5편 수록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우리 문단 기득권층의 성폭력 행태를 고발하며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58)이 본업으로 돌아왔다.
이미출판사는 최영미의 새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출간한다고 21일 밝혔다.
원래 시집 제목을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으로 하려다 주변의 만류로 무난한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문단의 거목 고은 시인에게 성추행 혐의를 제기한 최영미는 송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시집 출간까지 어려움을 겪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영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드디어 시집이 나왔다"면서 "내가 지금 할 말이 많은데, 다 할 수 없어 답답하다.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낸 책은 처음, 그 이유는 나중에…"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제목을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으로 하려다, 그럼 최영미의 모든 노력이 '헛되어' 질지 모른다고, 추천사 써주신 문정희 선생님이 말려서 결국 무난하게 '다시 오지 않는 것들'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표지도 더 강렬한 것 포기하고 무난하게…휘슬러 그림으로…이번 시집의 콘셉트는 무난하게 입니다. 소송 중이라 재판에 영향 줄까봐 조심조심"이라고 털어놨다.



모두 4부로 이뤄진 시집에서 제2부 '지리멸렬한 고통'에는 고은의 성추행 의혹을 고발한 '괴물'도 실렸다. '괴물'은 최영미가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은 고은의 성추행 의혹을 상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시로,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고 시인을 단번에 상습 성추행 혐의자로 지목되도록 하는 동시에 '문단 권력'을 비판대에 올렸다.
이 시는 또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 줄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과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어버린 문단에 강력한 일침을 가한다.
시 '괴물'을 쓸 때만 해도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최영미는 이번 시집에서 괴물을 포함해 '미투' 캠페인 관련 시 5편을 수록하는 등 여성 간 연대를 노래했다.
특히 시 '독이 묻은 종이'는 고은과의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분연히 전의를 다진다.
'대한민국 법원에서 보낸 소장을 받고/ 나는 피고 5가 되었다/(중략)/ 한 편의 짧은 시를 쓰고,/ 100쪽의 글을 읽어야 하다니/ (중략)/ 내가 아끼는 원목가구를 더럽힌다는 게 분했지만,/ 서랍장 위에 원고와 피고 5를 내려놓고//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독이 묻은 종이' 일부).
'내가 아니라 우리/ 너가 아니라 우리/ 싫어도 우리, 라고 말하자//(중략) 어머니라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노예 혹은 인형이 되어//(후략)' ('여성의 이름으로' 일부)
생활 속 세심한 시선에서 거두어 올린, 최영미 특유의 재치 넘치는 리얼리즘이 시집 곳곳에서 반짝거린다.
'내 앞에 앉은 일곱 남녀 가운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이 스마트한 문명을 용서해줄 수 있다'('지하철 유감' 일부)
최영미는 책 속 '시인의 말'에서 "내 생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며, 정신이 사나워져 시를 잊고 살았다"고 말했다.
시인 최영자는 발문에서 "한 편의 시를 쓴 용감한 수비수는 100쪽의 '독이 묻은 종이'를 모두 읽은 뒤, 사실을 증명하고 설명해야 했다"면서 "또다시 시시포스의 언덕 앞에서 싸워야만 하는 검투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최영미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 '사회평론부스'에서 오는 23일 오후 1시부터 저자 사인회를 연다.
그는 또 오는 25일 마포구 서교동 한 찻집에서 기자 간담회도 열 예정이다.
앞서 고은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 2월 1심에서 패소했다. 고은 시인은 무혐의를 주장하며 곧바로 항소해 2심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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