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주호민(38) 작가는 소문난 이야기꾼이다. 웹툰 '신과 함께'는 2010년 1월 네이버 연재와 동시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사람이 사후 49일간 저승에서 심판받는 과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녹인 이야기는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3부작으로 집필돼 한국 웹툰 최초로 일본에 수출됐다. 2015년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으로 무대에 올랐고, 2017년부터는 영화로 제작돼 총 2천6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토록 사랑받는 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게 저승'이라는 평범한 메시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들려준 덕분일 것이다.
2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창작가무극 '신과함께_이승편' 프레스콜에서 주호민과 만났다. 그는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이 작품을 썼다면서 "잊어버리면 소멸한다. 재조명하면서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 작가와 일문일답.
-- '신과 함께_이승편'을 어떤 기분으로 썼나?
▲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만든 게 맞습니다. 원작에서 여섯 명의 저승 명부가 나오는데요.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 한 분이 돌아가신 걸 표현했습니다. 10년 전보다 세상이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은 어디서든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면 소멸한다고 생각해요. 재조명하면서 잊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 작품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동네들, 설화를 잊어가는 사람들.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지키고 싶었나.
▲ 만화 '원피스'에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잊혔을 때야"라는 말이 나와요. 저는 제주도 신화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걸 바탕으로 '신과 함께' 등 이것저것 만들었는데요. 신화가 생명력을 이어가려면 창작물이 계속 나와야 해요. 굉장히 운 좋게 제 만화가 많은 사랑을 받게 돼서 (제주도 신화가) 알려진 걸 기쁘게 생각해요. 제게 사라지는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은 같습니다. 사라지기 때문에 지키고 싶어요. 잊혀가는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민담과 설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런 작품을 능력이 되는대로 해나가고 싶어요.
-- 신이 실제로 존재할까?
▲ '신과 함께_이승편'은 경기도와 제주도 가택신앙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다른 나라 신화에 비해 굉장히 생활감이 강해요. 신이 올림포스 이런 데 있는 게 아니라 부엌에 있어요. 조왕신은 부엌을 지저분하게 쓰면 싫어해요. (웃음)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인간을 돌봐주는 존재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승차사들이 그 집에 사는 사람들 수명이 다해 데리러 오면 가택신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묘사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참 좋았어요. 어떤 존재들이 날 지켜주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2017년 연말 '신과 함께-죄와 벌'과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남미 저승은 죄지은 놈도 춤추고 노래하며 지내는데, 한국 저승은 너나 할 것 없이 괴롭게 지낸다는 우스갯소리도 많았다.
▲ 하하(웃음). 솔직히 가혹해요. 그게 불교의 저승관인데 (죄 중에) 어이없는 것도 있어서 많이 뺐어요. 결혼하지 못한 죄도 있어요. 뺀 게 그 정도예요. 사실 지옥관이라는 게 나쁜 짓 하면 이렇게 된다고 겁을 줘서 훈육하는 거잖아요. 딱히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옛날 사람들의 잔혹한 상상력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만화로 풀어보려고 한 게 커요. '코코'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우리와 문화적 차이가 있겠죠. 둘 다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품은 '집'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집은 무엇인가.
▲ 지금은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집 하면 출근하는 느낌이고요.(웃음) 집은 제 마음의 충전소 같아요. 로봇청소기가 충전하러 들어가는 것처럼요. 심지어 군대에서도 밖에서 훈련하고 부대 들어갈 때 '집에 가자'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든 내 마음이 지금보다는 더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셸터(Shelter), 안식처, 아무도 날 해칠 수 없는 공간이요.
--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으로 각색된 걸 보니 어땠나.
▲ 원작은 진짜 끝까지 암울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안도'의 정서로 바뀌었더라고요. 그게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어요. 우울한 이야기다 보니 실제로 만화를 그릴 때도 고통스러웠는데, 뮤지컬에서는 여러 가택신이 사람들을 돌보려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담겨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각색된 부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그릴 걸 생각도 들더군요.
-- 어두운 이야기를 그리면서 고통스러운 건 어떻게 해소했나.
▲ 철거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철거민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걸 '언더 도그마'(약자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믿음)라고 한대요. 사실 강·약과 선·악은 전혀 상관없는 가치인데도요. '아 이게 아닌데,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박성호 캐릭터를 긴급 투입했어요. 용산참사 르포 기사를 보고 만든 캐릭터인데, 방학 때 철거용역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대학생이었어요. 딜레마에 빠진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이 작품을 그리면서 괴로움을 돌파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였어요. 마음이 이렇게 가는데 어떡해요? 처음엔 괴로웠지만, 박성호 캐릭터를 투입하는 정도로 타협을 봤죠. 뮤지컬에서는 박성호의 캐릭터 역할이 커져서 좋았어요. 제가 고민하던 지점이 좀 더 해소가 됐어요.
--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원작 이미지와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나.
▲ 사실 '이승편'을 그릴 때부터 고창석 님을 생각했어요. 부드러우면서도 그 안에 강단 있는 느낌이 좋아서요. 영화로 만들 때 가택신으로 마동석 님이 캐스팅됐다길래 '아, 저 사람들(가택신이 지키는 할아버지) 영원히 사는 건가?' 싶었어요. 하지만 고창석 님이 가택신이라면 (할아버지 캐릭터가) 죽긴 죽을 것 같아요. 이밖에 조왕신 역의 송문선 님, 동현이 역의 이윤우 님 모두 굉장히 싱크로율이 높아서 놀랐어요.
-- 좋은 콘텐츠 창작자로서 소비자가 해로운 콘텐츠를 걸러내는 팁을 줄 수 있나.
▲ 해롭고 유익한 기준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부터 해로운 콘텐츠를 즐기고 있기 때문에요. 몸에 안 좋은 게 맛있고 칼로리가 맛의 단위이듯, 그게 진짜 재밌거든요.(웃음) 판단은 각자 해야죠. 어떤 것을 보고 '한심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재밌다고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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