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지출' 이견…"복지 대신 생산적 분야에" vs "사회안전망 더 강화"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국책·민간 연구기관장들은 23일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하면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경기 하강 속도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담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관장들은 이를 위해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데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시급성과 효과가 큰 분야에 재정 지출이 집중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민간 경제 연구기관장들은 기업이 투자와 고용 창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책·민간 연구기관장 10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에 앞서 의견을 청취했다.
김영민 LG경제연구원 원장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단기적으로 확장적 재정 정책과 금리 인하와 같은 통화 정책으로 경기 하강 속도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며 "전반적인 경제 활력 제고에 한계가 있는 복지 분야 이전 지출보다,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갖추거나 혁신을 도모하는 등 순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쪽에 재정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조업과 수출에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기존 제조업은 임금이 계속 오르는 등 경쟁력이 자꾸 떨어져 투자가 어려운 상황인데, 고용 경직성 완화 등을 통해 새로운 투자 모멘텀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제조업, 수출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내수 강화 차원에서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국민들도 관광·문화·여가·의료를 다 해외로 나가 소비하는 것"이라며 관련 대책을 주문했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과 금리 인하 등 통화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며 "기업마다 인건비 인상, 노동·환경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국내에서 기업을 하고 투자와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이 계속 약화하는데,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서 해당 분야 핵심기술 개발을 해야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기업의 R&D 투자를 유도할 재정·세제 지원 대책을 주문했다.
또 "최저임금은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정해야 하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도 6개월∼1년으로 늘리고 처벌유예 기간도 늘려서 기업들이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은 "적극적, 확장적 재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확장 재정을 어떤 부분에 지출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며 "효과가 나오려면 모든 분야에 다 고르게 지출을 늘려서 되는 게 아니라 몇몇 분야에 집중해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안전망 확충에 돈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고, R&D나 혁신을 위한 기술개발 분야는 현재도 정부 예산 지원이 부족하지 않은데 그간 '나눠먹기식 지원'이 이뤄지면서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상 산업연구원 원장은 "단기적으로 재정을 확대해 경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며 "막연하게 재정 지출을 늘릴 게 아니라, 재정 지출을 생산성 있게 쓰기 위해 타겟팅을 면밀히 해서 공급 부문의 생산성도 높이고 투자도 유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금 시행 중인 수출활력제고대책의 지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며 과거 업황이 안 좋을 때 생태계가 망가졌으나 최근 수주 물량이 늘어난 조선업 부품업체를 예로 들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장은 "제조업은 고용 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쟁력 등에서 어려움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중소제조업체 중 단순 조립·가공이 아니라 자체적인 설계·제품 개발 능력이 있는 기업의 비중을 키워나가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타겟팅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원장은 "제2, 제3의 글로벌 국가 재정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국가채무비율 40% 선에 매일 필요가 없고, 재정 집행을 통해 대외 부문에서 오는 위축을 막아주는 게 필요하다"며 "'상저하고(上低下高)'의 '하고'는 재정이 얼마나 받쳐주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정부가 이번에 정책 목표를 제시할 때 '단기 처방'에만 몰두하기보다, 중장기적인 경제 구조 전환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유찬 조세재정연구원장은 "단기적으로 경기 살리기에 너무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하면 중장기적으로 나쁜 결과를 낼 수 있다"며 "대기업의 수출주도경제에서 내수 주도·소득주도 성장 기반으로의 전환, 에너지·기술 전환, 인구구조 전환 등 큰 흐름을 잘 분석하고 중장기적인 구조 변화에 대한 정책을 차분하게 잘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안전망 강화와 관련해 노인 빈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문도 있었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굉장히 높다. 소득 1분위의 70%가 노인인데 이를 떨어뜨릴 대책이 필요하다"며 공공부조 지출 확대와 노인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을 이번 대책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민간 경제 연구기관장들은 새로 교체된 청와대 경제라인에는 경제 활성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당부했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공정경제뿐만 아니라 지금은 경제활성화가 중요한 시기이므로 경제활성화에 좀 더 방점을 두는 경제정책방향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영민 LG경제연구원장은 "당장 전체적인 경제 상황이 안 좋다는 인식이 있다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세 가지 큰 축 중에서 뭐가 우선이고 무엇을 바탕으로 어떤 정책을 펴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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