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주의 '영웅' 외잘란 "선거 중립 지켜라" 지지자에 서한
에르도안 "쿠르드 무장조직內 권력투쟁"…親쿠르드 정당 "에르도안 선거개입"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를 눈앞에 앞두고 쿠르드 무장단체 지도자의 옥중 서신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앞서 이달 20일 쿠르드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71∼73세 추정)이 감옥에서 '인민민주당'(HDP) 지지자들에게 쓴 서한이 터키 관영 매체 아나돌루 통신을통해 공개됐다.
HDP는 쿠르드계 등 소수집단을 대변하는 정강을 내세운 정당이다.
1978년에 PKK를 결성하고 1984년부터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한 외잘란은 마르마라해(海) '감옥 섬' 임랄르에서 가중처벌 종신형을 복역 중이다.
터키에서 외잘란은 테러조직의 수괴이자 '살인마'로 취급되나 전 세계 쿠르드 분리주의자에게는 영웅적 혁명가요, 스승으로 통한다. 터키 쿠르드계, 특히 HDP 지지자 사이에서 영향력이 지대하다.
외잘란은 18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서한에서 "HDP가 민주주의 동맹을 구축할 때 현(現) 선거 논의의 일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면서 "민주주의 동맹의 중요성은 선거에서 중립적 입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호한 표현이긴 하나 '현재 선거', 즉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하지 말고 중립을 유지하라는 당부다.
올해 3월 말 시행된 지방선거 개표 결과 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후보가 집권 '정의개발당'(AKP) 후보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를 근소하게 꺾고 승리했으나 AKP의 이의 제기로 결과가 취소됐다. 재선거는 23일이다.
이스탄불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쿠르드계의 표심은 과거 선거에서 HDP 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끄는 AKP 지지층으로 나뉘었다.
2016년 쿠데타 시도 후 쿠데타와 무관한 쿠르드 정치인까지 '테러 혐의로 대거 투옥되는 등 HDP가 궁지에 몰리자 쿠르드계의 범(汎)야권 지지 성향이 강해졌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러한 쿠르드 표심 변화는 이마모을루 후보가 대체적인 예상을 깨고 이을드름 전 총리를 꺾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조사업체 폴리미터의 메흐메트 귀날 욀체르는 자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마모을루 후보가 쿠르드계의 몰표를 받는다면 많게는 50만∼100만표에 이르는 큰 격차로 이길 수도 있다고 최근 전망했다.
HDP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르드 표심 결집을 막으려고 수감된 외잘란의 서신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며 반발했다.
HDP의 공동대표 페르빈 불단과 세자이 테멜리는 21일 성명을 내어 "에르도안 대통령이 우리 당과 외잘란 사이에 반목을 만들려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그의 글을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불단, 테멜리 두 대표는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시장 재선거에) 얼마나 절박해졌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두 공동대표는 "HDP의 선거 전략과 전술 조처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고 단언했다.
외잘란의 서신 공개 직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서한은 PKK 지도부에 '심각한 권력투쟁'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외잘란 서한 공개와 AKP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HDP가 제기한 선거 개입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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