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인사들이 전한 對이란 대응 백악관 회의 분위기
'어른들의 축' 축출 뒤 매파에 '포위'…"트럼프, 공격철회 결정 흡족"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미군 정찰용 무인기(드론)를 격추한 이란에 대한 보복공격 문제를 놓고 백악관이 롤러코스터를 탔던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오후 3시 백악관 상황실로 여야 지도부 등 의원들을 소집, 긴급 회동을 가졌다. 의회 인사들과의 당시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 레토릭'과 '불개입 대외정책' 본능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미 CNN방송이 22일 보도했다.
당시 상황실에 모였던 여야 의원들은 사람들의 목숨이 자칫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압도한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무게를 느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對)이란 대응에 대한 자신의 '패'를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의원들이 개진하는 서로 다른 전망과 시각을 경청하는데 주력했다고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공화당 소속의 짐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이 전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점이었다는 게 리시 위원장의 설명이다.
리시 위원장은 일부 기자들에게 "나는 진짜로 그(트럼프 대통령)가 이 문제를 놓고 고뇌하는 걸 봤다. 이는 한 사람에게 귀결되는 문제"고 말했다. 보복공격 여부를 놓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의 고민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은 진짜로 이 문제에 대해 씨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국가안보팀은 거의 만장일치로 미국이 이란에 대해 보복공격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이르기 직전 보복공격을 철회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과 여러 차례 회의를 갖는 동안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한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몰입되고 진지했다고 CNN에 전했다. 미국의 보복공격 시 이란이 어느 정도 수위의 대응에 나설지에 대해 군이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 대규모 전쟁을 피하는 게 여전히 행정부의 중점 사안 중이라는 점 등을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군 당국자들도 불확실성 문제 등으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공격 결정을 거둬들인 데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CNN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 '이란 핵 합의' 철회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경고했던 참모들을 내쫓아낸 뒤 이제 일군의 '이란 매파' 집단에 의해 둘러싸인 형국이 됐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하며 '어른들의 축'으로 불렸던 인사들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군사 공격' 주장을 주도했던 이는 존 볼턴 NSC 보좌관이라고 한 당국자가 CNN에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공격을 지지했다. 한 당국자는 "대통령의 참모진과 국방부 지도부 인사들 간에 이란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놓고 완전한 만장일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에서 '끝없는 전쟁'을 종식하겠다던 자신의 공약을 환기하며 자제를 촉구한 외곽 그룹 및 의회 인사들의 조언도 청취했지만, '결단의 시간'을 앞두고 강경 라인을 고수하는 참모들에 의해 다시 한번 '포위'됐다고 CNN은 보도했다.
볼턴 보좌관을 포함한 강경파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드론 격추에 대해 이란 정권을 응징하지 않으면 이란과 그 외 다른 나라들에 나쁜 행위를 계속해도 좋다는 용인의 메시지로 비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을 승인하기로 했지만, 군 인사들이 공격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던 오후 7∼8시(동부시간 기준)쯤 참모진 및 군 당국자들과 다시 만났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격 작전을 취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CNN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0분 전 군 장교에게 보복공격 시 예상되는 사상자 규모에 대해 나눈 대화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 21일 트윗을 통해 150명의 사망자가 생길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공격 10분 전에 중단시켰다고 언급한 바 있다.
CNN은 그러나 "사상자 규모 통계는 통상적으로 군 당국자들이 대통령에게 여러 옵션을 제시할 때 함께 전달되며,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참 전에 관련 통계를 전달받았다"며 "대통령이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 듣지를 못한 것인지, 제대로 체화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공격 지시를 전격 철회한 데 대해 흡족한 듯 보였으며, 참모들의 조언을 저지해냈다는 모양새가 연출되자 좋아했다고 참모들이 CNN에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 등 강경파 참모들이 자신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려고 한다고 사석에서 비판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보복공격 중단 결정에 대해 찬사를 얻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이 나더러 '전쟁광'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들은 내가 비둘기파(a dove)라고 한다"고 말했다고 풀 기자단이 전했다.
보복공격 카드가 일단 수면 밑으로 내려가면서 대(對)이란 대응의 무게중심은 제재로 옮겨가는 모양새이다.
한 당국자는 "우리는 (이란에) 가할 추가적인 제재 압박 방안들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이 군사 옵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주안점은 추가 제재"라고 말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완전히 테이블에서 치운 건 아니다. 이는 대통령이 항상 유지하고 있는 옵션"이라며 "그야말로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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