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무용학과 교수로 부임, 발레 인생 2막 시작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발레리나 김지영(41)이 하늘로 비상하자 로맨틱 튀튀(발레 치마)가 우아하게 흩날렸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무대였다.
국립발레단은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참가작 '지젤'에서 김지영의 퇴단식을 열었다.
지난 4월 언론에 퇴단 소식을 전한 김지영은 이날 팬들과 공식적인 작별 인사를 했다.
공연 시작을 알린 건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김지영)이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이재우)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었다.
김지영은 섬세한 춤과 드라마틱한 연기는 그가 왜 정상의 무용수인지 웅변했다. 사랑에 빠진 소녀, 배신의 충격에 휩싸인 여인, 죽어서도 연인을 지키는 지고지순한 존재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김지영답게 풀어냈다.
오후 9시 10분. 120분 공연이 끝났다. 팬들은 발레단 측이 객석 아래 숨겨둔 야광봉을 꺼내 흔들며 환호했다. 김지영은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볼법한 광경에 깜짝 놀라 무대로 돌아왔다.
힘찬 박수가 끊이지 않자 어느덧 눈시울이 붉어졌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재우는 김지영 어깨를 끌어안고 머리에 살짝 입을 맞췄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김지영 홀로 남은 무대 뒤로 그의 인생을 총망라한 영상이 상영됐다.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거친 연습과 재활훈련, 화려한 공연 영상을 보던 김지영의 어깨가 가냘프게 떨렸다. 간신히 참은 눈물이 볼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러자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을 시작으로 80여명 발레단 식구가 차례로 꽃을 건네며 그를 꼭 안았다. 마지막으로 이재우가 꽃다발과 눈물을 닦을 손수건을 건넸고, 하늘에선 금빛 꽃가루가 쏟아졌다.
김지영은 공연에 앞서 "1997년 국립발레단의 첫 '해설이 있는 발레'의 '파키타'로 자신감에 넘쳐 무대에 섰던 소녀가 시간이 흘러 불혹의 나이로 국립발레단과의 마지막 무대에 선다"며 "발레를 처음 가르쳐주신 진수인 선생님, 수석무용수로 만들어주신 최태지 전 단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같이 무대에 서며 젊음을 느끼게 해줬던 동료들, 이 무대를 준비해주신 강수진 단장님, 오랜 시간 크나큰 사랑을 주신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오늘 제 춤이 여러분의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겨지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최태지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전 국립발레단 단장)은 "한국 발레계의 큰 별이 될 우리 지영이를 언제나 믿고 사랑한다"고 토닥였다.
강수진 단장은 "어쩌면 무거울 수 있었던 많은 타이틀을 내려놓고 이제는 오직 김지영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길 응원해요"라며 "지영 씨는 국립발레단 최고의 발레리나였습니다"라고 했다.
열 살 때 발레를 시작한 김지영은 1997년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뒤 발레단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을 거쳐 2009년 국내 복귀한 뒤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여성무용수 후보로 오르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김지영의 발레 인생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다음 달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발레 오브 서머 나이트' 갈라 무대를 펼친다. 가을부터는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강단에 선다.
작별의 순간, 김지영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30년간 무대를 아름답게 수놓던 김지영을 향해 팬들은 우렁찬 기립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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