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참사 26일째 마르지않는 조화·계속되는 수색…진상규명 아직

입력 2019-06-24 06:05  

[르포] 참사 26일째 마르지않는 조화·계속되는 수색…진상규명 아직
실종자 3명…22일 실종자 추정 시신 1구 수습해 신원확인 중
헝가리 경찰, 수사에 대규모 인력 동원…장기전 전망
헝가리 야당은 당국과 가해선사 간 유착의혹 제기




(부다페스트=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폭염 속 바짝 말라버린 조화들 속에 생명력있는 꽃들이 다시 놓여있었다.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참사가 발생한 지 26일째인 23일(현지시간).
사고현장인 헝가리 부다페스트 머르기트 다리 인근의 강둑에서 3명의 남녀가 추모객들이 갖다 놓은 조화와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다가 조화들을 보고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왔단다.
독일인으로 부다페스트에 거주 중이라는 20대 여성 마들렌은 이번 참사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슬픈 일입니다. 희생자들을 위한 꽃들로 보여 와봤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됐는데도, 시민들이 이렇게 새로 꽃들을 가져다 놓아 희생자들의 추모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게 아름다운 일인 것 같아요."
주말인 이날 오후 부다페스트 중심가와 연결된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는 휴일을 즐기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화와 초가 없다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온한 일상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제 현지 언론 보도에서도 허블레아니호(號) 침몰사고는 점점 잊혀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헝가리 당국과 한국 측 수색대원들은 수색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침몰사고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법적으로 결론이 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10일만에 실종자 추정 시신 추가 발견돼…韓수색팀 활동 이어가
이날 새벽 신속대응팀에 비상이 걸렸다. 전날 밤 헝가리 어부가 침몰현장에서 하류로 30㎞ 지점에서 여성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헝가리 당국이 전해온 것이다.
실종자로 확인될 경우 지난 12일 실종자 시신을 수습한 이후 10일 만에 추가로 수습하게 되는 셈이다.
허블레아니호에 탑승했던 한국인은 33명이다. 이들 중 7명이 구조됐고 현재까지 23명이 숨졌다. 헝가리인 선장과 선원도 사망했다.
부다페스트에 파견된 정부합동신속대응팀과 헝가리 당국은 이날 아침 일찍 신원확인 작업에 들어갔지만, 지문 감식에 실패했다.
사고 발생 2주 정도가 지난 뒤부터 지문 감식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양측은 곧바로 DNA 감식에 들어갔지만, 이 역시 수월치는 않단다. 신원확인에 최소 3일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헝가리와 신속대응팀은 헬기를 동원한 공중수색과 보트를 통한 수상수색을 벌여왔다.
최근 폭염이 이어지면서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져 진입하기 어려운 늪지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수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신속대응팀은 헝가리 당국에 지속해서 협조를 요청하면서 수색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신속대응팀에는 12명의 수색팀이 남아있다. 소방청 소속 구조대원들이다.
신속대응팀은 해외에서 수색활동 기간이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수색대원들의 체력적 문제 등을 고려해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
신속대응팀은 주말인 이날에도 팀장인 강형식 외교부 해외안전관리기획관 등이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으로 출근해 비상근무 체제를 이어나갔다.
최규식 주헝가리 한국대사도 주말에 실종자 가족들과 만나고 교민들이 마련한 종교 추모행사에도 참석했다.


◇ 65년만 대형사고에 대규모 인력투입…당국·가해선사 유착의혹도
이번 참사는 헝가리에서 65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선박사고다. 1954년에 헝가리 서부 지역의 벌러톤호에서 증기선 전복으로 23명이 숨진 바 있다.
이 때문에 헝가리 당국은 대테러청장을 사고 수습 책임자로 삼아 대규모 팀을 꾸려 수색 및 인양작업을 벌였다.
부다페스트 경찰은 수사에만 60명의 전담인력을 배치한 상태다.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은 데다, 한국 당국이 적극적으로 구조 및 수색 협조요청을 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고와 관련, 허블레아니호를 뒤에서 들이받은 가해선박인 바이킹 시긴호(號) 선사 측과 당국 간의 유착 의혹 및 이에 따른 부실수사 논란까지 불거졌다.
경찰이 사고발생 후 몇 시간 조사를 한 뒤 바이킹 시긴호를 방면한 점도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유착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야당 대표는 국회에서 빅터 오르반 총리를 상대로 직격탄을 날렸다.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헝가리대화당의 티메아 서보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대정부질의에서 오르반 총리를 지목하며 "허블레아니 희생자들을 위해 다뉴브강에 꽃 한 송이 던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르반 총리의 딸인 라헬 오르반이 관장하는 헝가리관광공사가 바이킹 시긴호 선사인 바이킹 크루즈의 이익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보 원내대표는 바이킹 크루즈와 헝가리관광공사가 다뉴브강의 유력한 선착장 관리 회사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킹 시긴호 선장 유리 C.가 법원에 낸 보석금 1천500만 포린트(6천200만원)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오르반 총리는 "30년 동안 의회에서 들은 가장 역겨운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부다페스트 경찰은 대정부질문 다음날 침몰사고와 관련해 수사 경과보고를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경찰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사고 조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누차 강조했다.
기자회견장 대형 스크린에는 헝가리 당국의 수색활동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기자회견을 연 데 대해 부실수사 논란을 의식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치치 쇼머 부다페스트 경찰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사고와 관련된 모든 흔적에 대한 자료는 모두 입수했다"면서 "바이킹 시긴호를 방면한 것은 합법적이었고, 전문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선장 과실 규명이 열쇠
헝가리 경찰은 가해 선박인 바이킹 시긴호에서 확보한 자료와 승객들의 증언 등을 통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바이킹 시긴호의 선장의 과실 규명 여부가 사고 조사의 핵심이다.
경찰은 바이킹 시긴호의 유리 C. 선장을 조만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사고 국면 초기 구속됐던 유리 C. 선장은 부다페스트에 머무는 조건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다.
현재 매주 2차례 경찰에 출석해 부다페스트 거주 보고를 하고 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은 주변 증거 조사를 마친 뒤 조만간 유리 C. 선장을 소환해 본격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현지 매체에서는 유리 C. 선장이 사고가 발생한 당시 운항 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경찰이 바이킹 시긴호의 승객들로부터 유리 C. 선장이 승객과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거나, 셀프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현지언론 마자르 넘제트는 승객이 선장에게 사고가 발생했다며 외쳤는데, 선장은 승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경찰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부다페스트 경찰은 상당한 자료를 확보했는데, 분석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쇼머 대변인은 "전문가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것이어서, 최종적인 조사 결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이 언제 최종적으로 정리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신속대응팀 관계자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수사결과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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