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실업에 대도시 민심, 與 심판" 해석…재선거 무리수로 더 큰 패배
에르도안 "시장자리 하나일 뿐"…'전체적 승리' 강조
개각·외교기조 변화 가능성 제기…"조기 선거 시행될 수도"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사실상 양자대결로 전개된 이스탄불 광역시장 재선거 결과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패배'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비날리 이을드름(63) 후보는 작년 대통령중심제 전환 이전까지 총리를 지냈고, 이후에는 터키의회 의장을 맡았다. 에르도안 정권의 '2인자'인 셈이다.
올해 3월 말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유세 내내 이스탄불에서도 이을드름 후보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AKP는 수도 앙카라와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광역시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스탄불에서는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투표소 감시원이 많았다는 이유로 선거 당국에 이의를 제기해 야당 후보의 당선 무효 결정을 끌어내고 재선거까지 관철했으나 결국 더 큰 격차로 졌다.
1994년 이래 줄곧 이스탄불시장직을 독식한 '에르도안 정당'의 패배 요인으로는 '경제난'이 가장 주요하게 꼽힌다.
터키 경제는 작년 3·4분기 연속으로 역성장하며 공식적으로 경기후퇴(recession)에 빠졌다.
작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매월말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이 20%를 웃돌았고 올해 2∼3월에도 20%에 육박했다.
실업률은 공식 수치로 13%를 기록해 10년만에 최악 수준이다.
경제여건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한 대도시에서 에르도안과 AKP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서민층에 '경제에 강한 정당', '유능한 정당'으로 각인된 AKP의 이미지는 경제난이 지속하자 되레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정치적 의미가 큰 이스탄불을 수성하려는 욕심에 재선거 '무리수'를 강행한 것도 역풍을 부르고 에르도안의 정치적 타격을 더 키운 모양새다.
최고선거위원회(YSK)가 지난달 재선거를 결정한 지 사흘 후 터키 최대 관광업 단체 '터키여행사협회(TURSAB)의 발표에 따르면 재선거 일정과 겹친 휴가 예약의 약 90%가 취소된 것으로 파악됐다.
재선거는 방학·휴가철에 치러졌음에도 투표율이 3월 말 동시 지방선거와 같은 84%를 기록했고, 두 후보의 격차는 0.2%포인트에서 거의 9%포인트로 크게 벌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체적으로 승리했으며, 다음 선거까지 4년이나 남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위기' 우려에 반박했다.
이달 16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구청장 39명 중 25명이 AKP 소속임을 상기하며, 재선거의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이스탄불은 과거 에르도안 스스로 "이스탄불에서 지면 터키에서 지고, 이스탄불에서 이기면 터키에서 이긴다"고 말했을 정도로 상징적, 실질적 의미가 큰 곳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로 '에르도안 불패' 신화가 깨졌고, 이는 범여권 내 분열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AKP가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모두 패배하는 등 선거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난다면 AKP의 유력 인사들이 집단 탈당, 보수 신당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세 기간에 확산했다.
AKP 사정에 능통한 언론인 무라트 옛킨은 로이터통신에 "이마모을루의 승리는 AKP와 에르도안의 쇠퇴가 시작됐다는 신호로 해석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옛킨은 이번 재선거로 개각과 외교정책 변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2023년 이전 조기 선거 가능성도 생겼다고 내다봤다.
tr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