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부자 12년간 키르기스·에콰도르서 도피생활(종합2보)

입력 2019-06-25 18:02  

정태수 부자 12년간 키르기스·에콰도르서 도피생활(종합2보)
검찰, 정태수 사망증명서 확보…"작년 12월 에콰도르서 신부전증으로 사망"
넷째 아들 "아버지가 따뜻한 곳 원해…2015년부터 간병에 전념"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박초롱 기자 =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숨졌다는 내용의 사망증명서를 검찰이 확보했다. 검찰은 해외도피 21년 만에 강제 송환된 정 전 회장의 넷째 아들 한근(54) 씨의 진술 등에 비춰 정 전 회장이 실제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련 증거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2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예세민 부장검사)는 한근 씨가 송환 과정에서 파나마 당국에 압수당한 여행용 가방 등 소지품을 전날 외교행낭을 통해 건네받았다.
한근 씨는 에콰도르 당국이 발급한 정 전 회장의 사망증명서와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위조 여권, 화장된 유골함 등을 정 전 회장의 사망·장례 증거로 제시했다. 사망증명서에는 정 전 회장의 위조 여권에 기재된 이름과 같은 인물이 2018년 12월1일 신부전증으로 인한 심정지로 숨졌다고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근 씨는 지난 22일 송환된 직후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부친 건강이 위독해져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더이상 연명이 어려운 상태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정 전 회장은 신장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투석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에콰도르 당국에 사망증명서 발급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화장된 유해는 DNA 감식이 어려워 정 전 회장의 사망을 직접 뒷받침하지는 못한다. 검찰은 에콰도르 현지 화장시설을 방문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장례식을 기록한 사진이나 동영상, 유서 등이 있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정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2007년 5월 지병 치료를 이유로 출국해 12년째 도피 생활을 해왔다. 한근 씨는 "(2007년) 부친이 해외로 나온 직후부터 함께 생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르기스스탄인 명의로 된 정 전 회장의 위조 여권은 2010년 만들어진 것으로 돼있다. 정 전 회장은 그해 7월 에콰도르에 입국했다. 검찰은 이들 부자가 키르기스스탄에 머물다가 에콰도르 과야킬로 건너가 도피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야킬은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약 500㎞ 떨어진 태평양 해안 도시다. 한근 씨는 "아버지가 따듯한 곳을 원해 에콰도르 안에서도 적도에 가까운 과야킬에 자리를 잡았다"고 진술했다. "간호사 자격이 있는 도우미를 고용해 신부전증이 있는 부친을 돌봤다. 2015년쯤부터는 부친 간병에 전념했다"라고도 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외국에 나간 이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한 사실을 확인하고 두 나라에 범죄인인도를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현지 당국에 직접 협조를 구하려고 지난달 에콰도르 출장을 계획했으나 수사권 조정 문제를 수습하느라 무산된 바 있다.
한근 씨는 고교 동창 이름을 빌려 미국·캐나다 영주권과 시민권을 딴 뒤 에콰도르로 건너가 유전개발 사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국내에서 운영한 한보그룹 자회사 동아시아가스는 에콰도르에 지사를 두고 가스개발 사업을 했다. 파나마 당국에 억류돼 송환된 한근 씨는 에콰도르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자녀들이 거주하는 캐나다 밴쿠버로 이동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근 씨 재판과 남은 수사를 하면서 정 전 회장 일가의 은닉재산을 추적할 방침이다. 한근 씨는 1997년 동아시아가스 자금 3천270만 달러(당시 한화 320억원)를 스위스 비밀계좌에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1998년 6월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은 공소시효 완성을 앞둔 2008년 9월 한근 씨를 기소했지만 아직 재판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검찰은 과거 수사에 착수했다가 기소중지한 한근 씨의 조세포탈·재산 국외 도피 혐의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국세청은 동아시아가스가 러시아 석유공사 주식 298만2천주를 매각하면서 1천991만 달러를 해외에 은닉하고 세금 129억원을 내지 않았다며 2001년 5월 정 전 회장 일가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다. 한근 씨는 이날 송환 이후 세 번째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이 사망한 것으로 최종 확인될 경우 그가 체납한 천문학적 세금은 환수가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정 전 회장은 증여세 등 73건의 국세 2천225억2천700만원을 내지 않아 고액 체납자 1위에 올라 있다. 한근 씨는 293억8천800만원, 셋째 아들인 정보근 전 한보철강공업 대표는 644억6천700만원의 국세를 체납한 상태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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