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칼 한 자루로 단단한 오석에 독특한 예술세계 펼쳐
"불편한 몸 대신 얻는 사물 통찰력, 인내가 작품 원동력"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단단한 돌에 전각 기법으로 그림과 글씨를 새겨 다양한 미술 세계를 표현하는 '전각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 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 현강(玄岡) 김동성(54) 씨에게는 검은빛이 나는 돌 오석(烏石)이 화선지이고 캔버스다.
오석은 비석이나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돌이다. 매우 단단해 글이나 그림을 새기기가 쉽지 않다.
김씨는 오로지 전각용 칼 한 자루로 서예, 동양화와 서양화, 구상과 비구상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칼로 새기는 선 굵기와 물감 색 농도로 명암과 원근감까지 자유로이 나타내는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종이나 캔버스에 그린 일반 회화작품처럼 보일 정도로 정교하다.
돌 표면을 칼로 새겨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고도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는 "돌의 성질을 익히는 데 20년 걸렸다"며 "하나의 오석 판도 부위에 따라 결이 다르고 돌 입자가 가늘고 굵고, 무르고 단단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돌에도 나무 옹이처럼 다른 부분보다 유난히 단단한 부분이 있어 이를 모르고 억지로 새기다 보면 전혀 엉뚱하게 선이 그려지거나 돌판이 깨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긴 세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한 끝에 지금은 돌을 물속에 넣고 손으로 만져보면 결이 느껴지고, 칼로 새기다 보면 옹이가 보인다고 했다.
그의 전각회화 작품들은 크기가 세로 30㎝, 가로 30~60㎝ 정도이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이 돌판에 그림을 새기는 작업은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짧게는 1주일,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린다.
매일 몇 시간씩 맨손으로 칼을 잡고 선을 긋고 깎아내는 작업을 하다 보면 물집이 생겨 며칠씩 칼질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작가들은 종이나 캔버스에 연필 등으로 미리 밑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한 뒤 물감을 칠해 작품을 완성하지만, 김씨는 단단한 돌에 그림을 새기면서도 그런 사전작업을 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작품을 구상하고는 곧장 칼로 그림을 새기기 시작한다.
"종이나 캔버스와 달리 돌은 결과 옹이가 있어 밑그림을 그려놓는다고 그대로 새길 수가 없다. 결이 맞지 않으면 선 방향을 그때그때 바꿔야 하고 옹이가 나타나면 둘러가거나 피해서 그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5일 오후 기장군 정관읍 김씨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작은 오석 판 하나를 가져와 대나무를 새기기 시작했다.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한 힘으로 선을 긋고 대나무 잎들을 새긴 뒤 돌판 위에 물감을 짜서 손으로 문질러 음각된 선 등에 밀어 넣은 방법으로 칠했다.
남은 물감을 닦아내고 말린 뒤 사포질을 하고 다시 물감을 칠하는 작업을 몇 번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 1시간여 만에 푸른색 대나무 작품을 완성했다.
구성이 복잡하고 묘사가 세밀한데다 다양한 색채를 구사하는 작품은 그만큼 채색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의 작품들은 돌에 새겨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색채도 화려하고 선명하며 원근감까지 잘 드러난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아크릴 등 여러 재료를 섞어 돌에 칠해도 벗겨지거나 떨어지지 않는 물감을 개발해 사용하는 덕분이다.
왜 전각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고, 하필이면 단단한 오석을 소재로 쓰냐는 물음에 그는 "글씨, 그림, 전각 기법 모두를 하나에 담아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 같은 나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단단한 오석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돌 자체는 하찮은 물체에 불과하지만, 그림과 글씨를 새겨 생명을 불어넣어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전각회화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각회화에 몰두하기 전 그는 이미 서예와 전각 분야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서예(행서, 초서)와 전각 작품으로 3차례 특선으로 입상한 바 있다.
지금은 신도시가 들어섰지만, 예전에는 한적한 농촌이었던 기장군 정관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다.
교내외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는 등 소질을 보인 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온 동네를 다니며 지나간 달력을 모아 주었다.
달력 뒷면에 연필이나 색연필, 크레용으로 달력에 있는 동양화나 서양화를 따라 그렸는데 원본과 매우 닮아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장난삼아 버스 승차권을 실물과 똑같이 그려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가 버스회사 신고로 들통나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선생님 권유로 유화를 배웠고, 서예에도 관심을 가져 취미 삼아 독학하다가 고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서예와 전각을 배웠다.
서예를 제대로 알기 위해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한국학을 공부했다.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 명필가들의 작품을 1천번도 넘게 따라 쓰고 익히며 자신만의 독창성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상하고 심사위원까지 맡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는 "장애로 인한 불편함은 어린 시설부터 다른 사람보다 사물을 더 정교하게 볼 수 있는 능력, 인내심, 정신의 풍요를 대신 주었고 그것이 오늘날 내 작품활동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소재를 끊임없이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그는 지금까지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어 1천여점 작품을 선보였다.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연 전시회를 찾은 몇몇 화랑이 그에게 유럽과 미국 진출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앞으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더 연구하고 기회가 닿으면 유럽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어 한국 전각 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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