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달착륙 50주년] '인류의 위대한 도약' 아폴로 11호

입력 2019-07-01 08:03   수정 2019-07-01 08:57

[인류 달착륙 50주년] '인류의 위대한 도약' 아폴로 11호
'달 착륙, 꿈이 현실로'…미국·소련 경쟁이 '촉진제' 역할
제2 달탐사 경쟁…달은 '목적지'에서 우주탐사 '전초기지'로 변화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입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디며 이렇게 말했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는 모습은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직접 찾아가 본 달의 실체는 동화 속에 그려진 아름다운 달나라와 달리 생명체가 전혀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달 착륙은 인류 역사에서 꿈과 상상 속에 있던 달을 실제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는 현실 세계로 끌어내린 인류사적 사건으로, 과학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달 착륙 성공은 '우주'를 인류가 개척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사고의 영역이 확장됐다는 점에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인류 발전에 새 획을 그었다고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달 착륙을 실제로 지켜보고 영감을 받은 이른바 '아폴로 세대'의 탄생을 예로 들며 "이전까지는 달을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눈으로 바라봤는데, 달 착륙을 계기로 과학의 눈으로 달과 우주를 바라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역시 달 착륙을 "지구가 아닌 천체에 인류가 발을 들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채 전 원장은 아울러 아폴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개발된 다양한 기술들도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성과로 꼽았다. 달 탐사 추진 과정에서 정수기와 전자레인지 같은 제품을 비롯해 다양한 신소재와 전자통신 등에 활용될 원천 기술들이 개발돼 인류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기술로 인류의 달 착륙은 '불가능한 꿈'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꿈은 미국과 소련(지금의 러시아)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특이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냉전으로 인해 양국 간 무기 경쟁이 시작됐고, 미사일 기술과 밀접한 발사체(로켓) 등 우주기술 개발로 이 경쟁이 확산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우주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이 중 하나가 '달 착륙 프로젝트'다. 인공위성 발사와 유인 우주비행 같은 우주 경쟁에서 모두 소련에 뒤처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미국은 달 착륙에 사활을 걸었다.
1961년 5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60년대 안에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고 발표하며 아폴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조황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원장은 "당시 미국은 GDP(국내총생산)의 0.7%를 아폴로 프로젝트에 투입했다"며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자원을 한 프로젝트에 집중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프로젝트는 초기부터 비극을 겪었다. 1967년 1월 시험 도중 화재가 발생했고 우주인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폴로 1호'로 명명된 프로젝트 초기에 발생한 이 사고 이후 미국이 다시 유인 시험비행에 나서기까지는 1년 9개월이 걸렸다.
미국은 1968년 12월에 발사한 아폴로 8호를 통해 마침내 소련을 앞질렀다. 아폴로 8호는 최초로 사람을 태우고 달 궤도를 회전한 뒤 지구로 귀환했다. 다만 착륙선이 없이 주 임무는 달 주위를 돌며 여러 정보를 수집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이 달 표면에 내려앉으면서 미국과 소련의 달 착륙 경쟁은 미국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소련은 무인탐사선인 루나 15호를 달로 보내고 있었다.



정치·사회적인 명분이 사라지고 달 착륙 성공으로 달에 대해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신비감도 줄어들면서 1976년 이후 달 탐사는 급격히 시들해졌다. 달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미국과 소련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대상으로서 달 탐사의 매력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일본, 인도 같은 신흥 우주국가가 달 탐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달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은 1990년 달 탐사선 히텐을 발사한 데 이어 2007년 셀레네 프로젝트를 통해 달 지형 정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중국은 2007년 창어 1호를 달 궤도에 진입시켰고, 2013년 창어 3호를 발사해 탐사 로버 '위투'(옥토끼)를 달 표면에 내려놓았다. 창어 4호는 올해 초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인도는 2008년 달 주위를 도는 찬드라얀 1호를 발사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 달 궤도선을 보낸 뒤 2030년 안에 탐사선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달 탐사가 1960년대 미국과 소련 양국 간 경쟁에서 이제는 후발주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경쟁이 다각화된 모양새다.
달 탐사의 목적도 바뀌었다. 1960년대에는 달이 탐사의 최종 목적지였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달은 화성이나 소행성 등 다른 천체로 가는 미래 우주탐사의 '전초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달 탐사 비전 역시 달이 끝이 아니다.
한편, 국가 간 경쟁 구도와 동시에 범국가적인 협력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달 기지를 구축하려는 '문 빌리지(Moon Village)와 달 궤도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인 '루나 게이트웨이'가 대표 사례다. 이런 달 탐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프로젝트를 잇는 차세대 국제협력 우주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이창진 교수는 "1969년 달 착륙은 우리에게 남의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우리도 달 탐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달 탐사는 한반도에 한정된 우리 역사를 달이나 우주로 확대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인류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황희 원장은 "비록 ISS 사업에는 우리가 참여하지 못했지만, 달 탐사 협력에 참여하면 기술을 쌓아 계획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s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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