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가해자, 미국은 정당방위' 틀 짜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이행을 보증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탈퇴한 미국이 이란이 이행 범위를 줄이자 강력하게 경고했다.
정작 자신은 지키지 않았으면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란엔 핵합의를 계속 지키라고 압박한 것이다.
미국 정가에서 이란에 가장 적대적인 인사로 꼽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5일 '이란이 우라늄 저장한도를 넘기면 군사적 선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란이 그 한도(저농축 우라늄 저장한도)를 무시할 경우 정말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한 지 만 1년이 되는 지난달 8일 핵합의에서 이란이 서방에 약속한 핵프로그램 동결·축소 의무 가운데 저농축 우라늄과 중수의 저장한도를 넘기겠다면서 핵합의에서 한 발 뺐다.
이란은 이달 27일 저농축 우라늄의 저장한도를 넘기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들 두 핵물질의 저장한도를 넘기게 된 것도 이란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지난달 3일 미국이 이란이 핵합의에 따라 저농축 우라늄과 중수 초과분을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을 돕는 행위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이란 핵합의가 이행된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분기마다 이란 핵프로그램 사찰 보고서를 냈고, 단 한 번도 이란이 핵합의를 어겼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볼턴 보좌관의 언급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조율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볼턴 보좌관 못지않은 강경파인 만큼 둘의 의중이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의 정부정책 전공 니컬러스 밀러 부교수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볼턴의 전략은 이렇다. 첫째, IAEA와 미국 정보기관을 무시하고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반복해 주장한다. 둘째, 이 주장으로 핵합의 탈퇴와 최대 압박을 정당화한다. 셋째, 압박으로 이란이 결국 핵합의를 탈퇴하도록 한 뒤 공격을 밀어붙인다"라고 비판했다.
볼턴 보좌관의 경고에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즉각 "유럽 측이 핵합의를 계속 지키지 않으면 예고한 대로 7월 7일 핵합의 이행 범위를 줄이는 2단계 조처를 시작한다"라며 강경하게 응수했다.
미국은 1년 전 일인 자신의 핵합의 탈퇴는 언급하지 않고 최근 부쩍 이란을 '최대 테러 지원국'으로 낙인찍고 호전성과 공격성을 부각해 세간의 관심을 전환하고 있다.
오만해에서 한 달 새 두 차례 벌어진 유조선 피격의 주체를 이란으로 특정하고 미군 무인 정찰기가 국제공역에서 이란군에 격추됐다고 주장하면서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의 명분을 쌓는 모양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의 원인 제공자가 이란이라는 여론전을 펴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5일 트위터에 "이란이 미국의 털끝 하나라도 공격하면 엄청나고 압도적인 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위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 볼턴 보좌관 등 미국 내 '매파'가 이란이 받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 협상하자고 공개 제안하면서 '이란이 거부해 협상이 되지 않는다'라는 틀을 짜 공세를 가하는 것도 진지하게 협상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란에 책임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의 정치 평론가는 26일 연합뉴스에 "미국은 유리한 언론 지형을 이용해 이란이 '가해자'라는 인상을 심고 이에 대한 자신의 군사행위가 '정당 방위'라는 틀을 짜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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