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피셰르 &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그가 지휘봉을 흔들자 시간이 새롭게 흘렀다. 순간적으로 느렸다가 빨라지곤 하는 이반 피셰르의 지휘봉은 악보에 나타난 지시사항과 상관없이 움직일 때가 많았지만 그것은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가 구현해낸 음악적인 시간은 선율의 본성과 흐름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며 듣는 이를 고양하는 흥과 멋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셰르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하 BFO)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더욱 뚜렷하고 확실한 개성을 표출한 연주로 깊은 감흥을 전해주었다. 연주회 전 전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조율하는 방식부터 남달랐다. 통상 기준이 되는 A음 외에도 G음 등 다른 음도 함께 맞추는가 하면, 곡에 따라 튜바를 현악기 그룹 중앙에 배치하는 등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에 대한 고정관념 또한 없었다.
무엇보다 이반 피셰르와 BFO 연주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어떤 음악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독특한 개성이었다. 그것은 '헝가리풍'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악기를 소리 내는 방식이나 선율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악센트와 인토네이션으로 표현되곤 했다.
특히 공연 후반부에 그들이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선 브람스의 '헝가리 교향곡 1번'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리듬 맛이 가미된 작품 해석과 신들린 연주로 관객들을 한껏 들뜨게 했다. 일찍이 헝가리 음악에 매료되어 여러 헝가리 무곡을 작곡하기도 한 브람스도 이 연주를 들었다면 아마도 감탄했을 것이다. 세계 정상급 독일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합주로 구현한 브람스 교향곡도 물론 좋지만, 헝가리풍 흥겨운 리듬과 색채감이 가미된 브람스 교향곡은 매우 새롭고 매혹적이었다.
그들의 연주에선 오케스트라 연주에선 통상 금기로 통하는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 합주 시 음색이 튀는 현악기의 개방현(손가락으로 줄을 누르지 않고 소리 내는 현) 연주는 일반적으로 금기시되지만 BFO 단원들은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해 선율에 색채감을 덧입혔다. 또한 브람스 교향곡 1번 2악장 초반에 나오는 혼의 폐쇄음(혼 주자가 오른손을 벨 속으로 깊숙이 넣어 만들어내는 막힌 소리)은 다른 오케스트라의 경우 거의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오히려 그 특유의 콧소리가 더욱 부각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순간적으로 템포를 변화시키는 이반 피셰르 지휘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유동적인 템포 감각이야말로 놀라웠다.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에서 현악기가 연주하는 감동적인 제1주제는 그 이후 다른 악기에 의해 재현될 때마다 단 한 번도 똑같은 템포와 성격으로 연주된 적이 없었고, 매번 색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감동을 자아내곤 했다.
이반 피셰르와 BFO는 앙코르로 브람스 헝가리 무곡 14번과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춤곡을 신명 나게 연주해내며 고양된 분위기 속에 음악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공연 전반부에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연주되었다. 베토벤이 피아니스트로 명성이 높던 청년 시절에 완성해 직접 현란한 연주를 선보이며 초연한 이 협주곡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의해 당당하고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조성진은 기존 무대에서 선보이곤 한 고상하고 절제된 연주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면을 가미한 연주로 갈채를 받았다. 자신감과 확신에 찬 그의 연주는 트럼펫과 팀파니가 편성된 이 협주곡의 축제적인 성격과 잘 어우러졌다.
또한 느린 템포 속에서도 서정적인 선율미를 살려내야 할 2악장에서 노래하듯 감미로운 그의 피아노 연주는 설득력 있었다. 조성진은 앙코르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가운데 2악장과 브람스의 6개 피아노 소품 중 제5번을 연주했다. 조성진의 앙코르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지휘자 이반 피셰르는 오케스트라 뒤쪽 단원 석에 앉아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조성진 연주를 진지하게 감상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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