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28~29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한일 정상회담은 일단 열리지 않게 됐다. G20 회의는 회원국 정상이 대부분 참석해 활발하게 다자, 양자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로, 우리나라도 주요국들의 정상과 회동하며 여러 외교 현안을 논의하게 된다. 이웃 국가에서 열리는 회의인 데다 풀어야 할 현안도 많은 일본이라는 점에서 한일 정상회담 기대감은 높은 상태였다. 한일관계 경색을 풀 수 있는 자리가 기약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한일 정상회담 조율과 이에 따른 논란은 두 나라 간 깊어진 골을 다시 확인하게 해줘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항상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또 "일본에서는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 없다. 한국은 '우리가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는데, 그쪽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일본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일본이 이 회의를 계기로 총 19개 국가·기구 수뇌와 양자 회담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회담 제안에 답을 안 하는 건 외교의 기본자세에 어긋난다.
요즘 한일관계는 매우 걱정스럽다. 작년 10월 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일본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 및 레이더 조사 논란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갈등까지 이어졌다. 우리 정부는 꽉 막힌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강제징용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일본은 곧바로 거부했다. 일본은 이 문제가 1965년 맺은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계속 나빠질 경우 두 나라 간 외교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관계 회복은 큰 과제가 됐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를 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자산 매각 등 현금화가 이루어지면 한국에 대응 조처를 하겠다고 예고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양측의 강경 입장을 보면 최근 격화된 미·중 무역전쟁 양상과 비슷하다.
상황이 어렵지만 그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외교다. 입장이 다를 때 갈등하다가도 협력을 통해 상호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문명국가들의 자세다. 두 나라가 서로 각을 세우고 보복 조치를 통해 상처를 주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나라는 발전적 미래를 위해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재개되는 시점에서 일본과 정상회담에 목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지 모르나 경색이 장기화할 경우 언제 우리가 아쉬운 입장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G20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마주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잠시 조우하다가 좀 더 진지한 자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관계회복을 원한다면 우리 정부는 열린 자세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54년 전 체결한 청구권협정이 모든 걸 면책해준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한국에 큰 아픔을 준 가해국이 일본임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 피해자들의 고통이 현재진행형인 마당에 거의 두 세대 전에 체결한 협정으로 역사적 죗값을 다 치렀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우리나라와 협력관계를 지속하려면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 호응해야 한다. 일본 집권당이 다음 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과 각을 세우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 상황을 계속 가져가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을 위한 외교가 아니라 선거 승리를 위한 외교를 선택한다면 다시금 한국과 일본 모두에 과오를 저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