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취업치료 가능" 하루 치 6만원 휴업급여 결정
사건 현장 보면 식은땀 줄줄…치료받으려 3개월 무급병가, 복직 불투명
(진주=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얼굴에서 피가 나오고 있는데도 쓰러진 주민 먼저 돌보고 마지막으로 구급차에 올랐습니다"
[진주가좌주공아파트 제공]
지난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시 가좌동 주공아파트 방화 살인 참사 현장에서 20대 아파트 관리소 당직 근무자 정연섭(29)씨가 피해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정 씨는 사건 당일 오전 4시 28분 아파트 303동 4층에서 화재 비상벨이 울리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112, 119로 신고하고 화재 확산을 막으려고 불이 난 아파트 가스 밸브 잠금 상태를 확인하고 4층 전체 현관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그때 정 씨는 4층에서 방화 살인범 안인득(42)과 현장에서 대치했다.
안인득은 "관리소에서 하는 일 있나"라고 짧게 말했고 정 씨는 "신입이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순간 안인득의 흉기가 정 씨 얼굴을 찔렀다.
왼쪽 얼굴에서 피가 쏟아졌다.
정 씨는 얼굴에서 피가 나는데도 1층과 4층을 오르내리면서 쓰러진 주민을 돌봤고 경찰이 도착하자 안인득이 있던 3층으로 가라고 소리쳤다.
정 씨는 3층에서 경찰과 안인득이 대치한 것을 확인하고 각 층 계단에 쓰러진 주민들을 119 구조대원과 함께 응급차로 옮겼다.
피해 주민들이 모두 응급차에 오른 것을 확인한 후 맨 마지막에 자신도 응급차에 올라 쓰러졌다.
정 씨는 왼쪽 얼굴 광대뼈가 골절되고 신경까지 손상돼 전치 20주 진단을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유 아파트를 위탁 관리하는 남부건업에 입사한 지 40여일 만에 벌어진 방화 살인 참사현장에서 피 흘리며 당직 근무를 수행한 그에게 현실은 혹독했다.
두 달간 병원 2곳에서 수술, 입원, 통원 치료를 받으며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휴업급여는 부상, 질병으로 취업하지 못하는 기간에 대해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보장을 위해 임금 대신 지급하는 급여로 미취업기간 1일에 대해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정 씨의 다친 부위가 얼굴이어서 '취업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정 씨가 신청한 휴업급여 기간 중 단 하루 치만 휴업급여 지급을 결정했다.
정 씨에겐 하루 치 6만여원이 지급됐을 뿐이다.
공단 측은 '휴업급여 일부 지급 처분은 의학적 소견에 근거한 정당한 처분'이라고 결론 내렸다.
쪼들리는 생계와 힘겨운 일상이 반복되자 정 씨는 이달 초부터 다시 아파트 관리소에 출근하기로 했다.
힘들 게 다시 출근했지만,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아파트 사건 현장 쪽을 찾으면 정신이 혼미했다. 금방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의사는 정 씨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신체 및 심리적 손상이 원인이 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내렸다.
정 씨는 얼굴 쪽도 봉합 수술을 했지만, 신경 곳곳이 손상돼 식사도 다른 한쪽으로만 가능한 상태다.
양쪽이 서로 다른 일그러진 얼굴, 다소 어눌한 말투도 견디기 힘들었다.
정 씨는 "사건 당일 상황을 떠올리면 참혹하고 끔찍하지만, 관리소 직원 누구든지 이런 위급한 일이 닥치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굴 부기가 빠졌으나 다친 신경 쪽이 되살아날지 걱정이며 그보다 심리치료를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큰 걱정"이라고 아픈 심경을 밝혔다.
관리소 측은 정 씨에게는 업무 복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치료라고 판단했다.
결국 정 씨는 오는 7월부터 3개월간 '무급 병가'에 들어가기로 했다.
정씨가 하던 일은 새 직원이 맡게 된다.
심리치료 등을 받게 되는 정씨가 3개월 후 다시 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정경안 아파트 관리소장은 "참사현장에서 피 흘리며 헌신적으로 주민을 돌보고 직무에 충실했던 젊은 직원인데 워낙 마음의 상처가 커 치료가 더 필요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정 소장은 "산재보험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소견서를 추가로 제출해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안타까운 사연을 입주민들에게도 알려 마음을 모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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