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심의 발목 잡은 '차등적용'…'저임금 업종 낙인' 우려

입력 2019-06-26 21:08  

최저임금 심의 발목 잡은 '차등적용'…'저임금 업종 낙인' 우려
"차등 기준 미비" 지적도…경영계, 작년처럼 집단 퇴장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진행 중인 최저임금위원회가 26일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를 놓고 파행에 빠졌다.
사용자위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도 차등 적용이 무산되자 최저임금위원회를 집단 퇴장했다. 지난해와 같은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 내년도 최저임금, 모든 업종에 동일 적용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제5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 안건을 표결에 부쳤고 재적 위원 27명에 찬성 10명, 반대 17명으로 부결됐다.
경영계 찬성, 노동계 반대의 구도 속에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대부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은 모든 업종에 동일하게 적용하는데 차등 적용은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큰 취약 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수준도 낮게 적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은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 제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시행한 것은 최저임금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 단 한 번뿐이다. 당시 2개의 업종 그룹을 설정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했다.
이듬해부터는 모든 업종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했고 지금까지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자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업종별로 인건비 부담 능력의 격차가 큰 만큼, 음식숙박업과 도소매업 등 최저임금 인상에 취약한 업종은 최저임금도 낮게 정해야 한다는 게 경영계의 입장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이들 업종의 고용 축소를 완화해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고 경영계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저임금 노동자 보호라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음식숙박업과 같이 최저임금 인상에 취약한 업종에는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데 이들의 최저임금을 낮게 정하면 저임금 상태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는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산하 최저임금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도 논의됐다.
당시 TF는 '현재 시점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다수 의견으로 제시했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일부 업종에 저임금의 낙인을 찍을 수 있고 차등 적용의 기준이 될 통계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다수 의견의 근거였다.
올해 최저임금을 심의한 지난해 최저임금 전원회의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업종별 차등 적용을 요구했으나 부결되자 집단 퇴장했다.
당시 사용자위원들은 끝까지 회의를 보이콧했고 근로자위원들과 공익위원들만 남아 올해 최저임금을 의결했다.


◇ 최저임금 월 환산액 병기 방식도 유지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이날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 병기 안건도 표결에 부쳐 찬성 16명, 반대 11명으로 가결했다.
시급으로 정해지는 최저임금에 월 환산액을 병기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이 또한 경영계의 요구와는 반대되는 결과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서는 경영계가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 병기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이 문제가 초반부터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5년부터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을 병기해왔다.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 병기에 대한 경영계의 반대는 환산 기준이 되는 월 노동시간(209시간)에 대한 반대와 결부돼 있다. 209시간에는 유급 주휴시간이 포함되는데 경영계는 주휴시간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환산 기준인 월 노동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면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지기 위해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할 때 분모가 커져 사용자에게 불리해진다.
정부가 작년 말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한다고 명문화했을 때도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경영계는 개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도 제기해놓은 상태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과 월 환산액 병기 문제 모두 불리한 결과를 맞은 경영계는 집단 퇴장으로 강한 반감을 표시했지만, 작년처럼 끝까지 보이콧을 유지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정부 여당에서도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올해 최저임금 심의 환경은 현 정부 들어 어느 때보다 경영계에 우호적인 만큼, 회의에 복귀해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가 집단 퇴장이라는 강수를 둔 것도 업종별 차등 적용과 월 환산액 병기 문제를 노동계에 내줬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최저임금 수준에서는 경영계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날 노사 양측에 오는 27일 전원회의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동결이나 인하를 요구할 것으로 점쳐진다. 경영계는 2009년 최저임금 심의에서 5.8% 인하를 요구한 바 있다. 이후 해마다 동결을 요구하다가 2017년 한 해만 2.4% 인상을 제출했고 지난해 다시 동결을 요구했다.
ljglor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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