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비상] ② "물 좀 주세요"…생활용수난에 전시상황 방불

입력 2019-06-27 16:00   수정 2019-06-27 16:41

[수돗물 비상] ② "물 좀 주세요"…생활용수난에 전시상황 방불
진정 국면이라는데 가정·식당·학교 현장은 여전히 대혼란
홀몸노인·장애인 등 취약 계층 불편↑…복지시설서 생수 전달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진 27일에도 피해지역인 서구와 영종도 일대는 여전히 전시상황을 방불케 할 만큼 혼란스러웠다.
인천시 서구와 인천시 사회복지협의회가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배급하기 위해 생수를 쌓아놓은 인천시 서구 연희동 아시아드주경기장 주차장.
주차장 한편에는 2ℓ짜리 생수 480통이 든 화물 박스가 2m 가까운 높이로 쌓여 있었으며 화물 트럭과 SUV 차량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인근 사회복지관이나 요양원,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생수를 지원받기 위해 직접 끌고 온 차량이다. 하루에만 보통 10∼30개 기관이 이곳에서 생수를 받아간다.



서구는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22일까지 검암경서·검단·불로대곡·원당·당하동 등 12개 동에 생수 2천766t(22만1천280박스)을 지원했다.
아파트는 관리사무소를 통해, 빌라는 공원이나 인근 동 주민센터 등을 통해 가구별로 생수를 배급하는 방식이었다.
중구 역시 지난 16일부터 이날까지 영종도 주민들에게 생수 1천324t(11만 박스)을 지원했다.
같은 기간 인천시와 서울시가 주민에 지원한 병입 수돗물 미추홀참물과 아리수도 300t이 넘는다.
그러나 피해지역이 광범위하고 인력이 부족해 생수 현장 배급을 계속 이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중구의 경우 아직은 정해진 날짜마다 영종도 주민들에게 생수를 배급하고 있지만, 서구는 직접 생수를 사서 쓰기가 어려운 홀몸노인·경로당·장애인시설·사회복지시설 등에만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생활용수인 수돗물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일상은 혼란에 빠졌다.
일반 가정집부터 식당가·학교·사회복지시설까지 수돗물을 쓰는 곳이라면 어디든 적수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원당동에 거주하며 7살과 12살 자녀를 키우는 손지현(42)씨 부부는 매일 수도꼭지에 끼운 필터를 갈면서 20일 넘게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생수를 아무리 아껴도 아토피를 앓는 아이를 씻기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만 하루 5병 가까이 써야 한다. 그나마도 손씨 본인은 필터로 거른 수돗물로만 세수와 샤워를 하는 형편이다.
손씨는 "정작 구에서 받은 생수는 6병에 불과해 힘겹게 지원한다고 해도 주민들은 체감도 못 하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필터 비용으로만 50만원 가까이 쓴 것 같은데 요즘은 수질을 정상화한다며 관로 방류를 하고 있어서 오후 9시 넘어서는 적수가 심하게 나오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피해가 극심한 곳은 물을 가장 많이 써야 하는 식당이다. 수돗물 없이 장사하는 것도 버겁지만 시민들의 불안 심리 때문에 매출까지 뚝 떨어졌다.
실제 피해지역 주민들은 '집에서도 생수만 쓰기가 어려운데 물 많이 쓰는 식당에서 그게 가능하겠냐'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가게들은 바깥에 '모든 음식에 생수를 쓴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이거나 테이블에 생수병을 놓아두며 손님 발길을 끌어오느라 분투하고 있다.



그나마 홀몸노인과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 계층은 이번 사태에서조차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야 했다.
적수 피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거동이 어려워 생수를 직접 사 마실 수 없는 이들이 대다수다.
서구에 있는 사회복지기관만 257곳에 달하는데 이들 기관은 식수가 떨어질 때마다 자체 차량을 동원해 배급하는 생수를 어렵사리 실어가고 있다.
현재 시 사회복지협의회가 기부받은 생수 24만병을 매일 사회복지시설·요양원·장애인시설 등에 지원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절반 넘게 동이 났다.
생수를 가지러 배급 현장에 나온 김효순(49) 인천시 서구 성모재가노인지원서비스센터 대리는 "어르신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잘 모르시거나 알더라도 '눈으로 봤을 때 이상 없으니 괜찮다'며 그냥 수돗물을 드시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아 나눠주는 생수조차 받으러 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 센터가 돌보는 노인분만 180명인데 이분들을 일일이 찾아가 배급받은 생수를 나눠드리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인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날 오전 기준 적수 피해 학교 160곳 가운데 생수로 급식을 만드는 학교는 105곳(65.6%)이다. 또 급수차를 지원받아 급식을 조리하는 학교가 39곳이고, 외부위탁이나 대체급식을 하는 학교는 9곳이다.
100곳 넘는 학교에선 3∼4명에 불과한 조리실무원들이 생수나 급수차로 수백 명분 급식을 만들고 있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무거운 생수통을 옮기고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음식을 조리하느라 근무 시간까지 늘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대체급식을 한 서구 중학교 2곳에서는 집단 식중독까지 발생해 일선 현장의 피로도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일선 학교들은 조리실무원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조리 공정을 되도록 간소하게 하는 한편 교육지원청별로 대체 인력풀을 구성하고 있다.
이상훈 인천시교육청 대변인은 "학생과 학부모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 적수 사태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수돗물을 이용한 급식을 재개할 수 없다"며 "이에 따른 일선 근로자들의 피로를 덜고자 여러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민관 합동조사단과 협의를 거쳐 세부적인 지원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일단 상·하수도 요금은 피해 기간 전액 면제하고 저수조 청소비는 실태 조사를 거쳐 실비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생수나 필터 비용도 영수증 확인 후 실비로 지원할 계획이지만 아직 세부적인 기준은 확정되지 않았다.
chams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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