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시민' 소외감에 反난민정서 더해진 옛동독지역 주민들 극우 AfD에 솔깃
'나치에 문 열어줬다가 재앙 겪은 과거사 반복될까 우려' 목소리도
(베를린·라이프치히[독일 작센주]=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마음의 장벽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11월9일)의 해를 맞아 독일을 찾은 한국 기자들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일명 대안당)의 득세 배경을 물었을 때 독일인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동서간 '심리적 장벽'을 거론했다.
2013년 창당한 AfD는 반(反)난민·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하며 2017년 9월 총선에서 제3정당(12.7% 득표)으로 연방하원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도 바이에른 주 지방선거 등에서 선전하며 독일의 16개 주 의회에 모두 진출했다. 이들의 득세는 구 동독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동독이 서독 체제에 흡수된 1990년 통일 이후 29년이 흘렀지만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의 상실감과 소외감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그것이 AfD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 연결되고 있다는게 독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도 베를린과 구 동독 지역인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20명 가까운 독일 학자, 전현직 언론인, 전직 정치가, 시민운동가 중 누구도 통일 전의 분단 상태 그대로 있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구 동독 지역 출신인 토마스 마이어 전(前) 라이프치거 폴크스자이퉁(LVZ) 기자는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일 통일은 성공적인 역사라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당시 원했던 것보다 좀 빠르게 진행되긴 헀지만 당시 있던 여러 대안들은 사실상 실행불가능한 것이었다"며 "통일이 유일한 결과였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 29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독 지역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서독지역에 비해 20∼30% 떨어지는 현실 속에 통일 과정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통일 당시 동독의 생산성이 서독의 4분의 1에 불과했는데도 동독 마르크화를 서독의 마르크화와 일대일로 교환하면서 제조업체의 40%가 문을 닫을 정도로 동독 지역 경제의 기반이 흔들렸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 지역으로 떠났고 이로인한 인력의 공백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소외감이 작지 않다고 독일 지식인들은 전했다.
얀 에멘되르퍼 LVZ 편집장은 동서간 경제력 격차에 대해 "다른 동유럽 지역 중 독일의 구 동독 지역 만큼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없다"며 "그런데 동독 지역 사람들은 서독 지역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이 통일할 경우 북한 지역 사람들은 절대 자신을 베트남 등과 비교하지 않고 남쪽과 비교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독지역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 속에 과거 동독에서 시행된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향수도 적지 않았다.
마이어 전 LVZ 기자는 "동독 시절에는 당국서 큰 아파트를 지어 주거공간을 마련해 줬는데 통일 후에는 그런 것도 잘 안해서 지금 주거문제와 높은 월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장벽 건설(1961년)전 동독을 탈출해 서독에 살다 통일후 다시 동독 지역에 정착한 위르겐 라이히 라이프치히 현대사포럼박물관장은 "동독에서는, 모든 세대가 같은 지역에서 일하고 아프면 그곳의 병원에 가고, 아이는 그곳의 유치원에 보내서 삶의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것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또 "(장벽 붕괴의 시발점이 된) 라이프치히 평화혁명 당시 현지의 젊은이들이 지금 50대 중·후반인데 기회가 많지 않다는데 대해 절망하고 있다"며 "통일 이후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새 직업을 얻도록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했는데 기회가 많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칼막스대(현 라이프치히대) 교수를 지낸 볼프 스카운 박사는 "통일된 이후 동독의 형제·자매들을 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우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고,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한네스 모슬러 교수도 "동독 지역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베를린자유대 언론학과의 앙케 피들러 교수는 "(독일 통일의) 역사는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다"며 "옛 동독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는 독일의 2등 시민'이라는 좌절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보여주는 '통일 후유증'이 결국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소외감과 열등감에 2015년 독일의 '100만 난민 수용'이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라이히 관장은 "동독지역 주민들의 문제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의견을 나눴어야 했다"며 "결국 이들 문제에 대한 불만족과 실망감이 극우 세력이 성장하는 토양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AfD가 '한때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모슬러 교수는 "과거 독일에서 나치즘이 팽창하기 시작했을 때 보수파들이 나치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적 자리를 열어줬다"며 "'집권 기민당이 AfD를 극우로 몰지말고 자리를 열어줘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데 그런 주장을 들으며 과거가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소개했다.
스카운 박사는 "AfD의 지도부는 말도 잘하고, 레토릭(수사)도 매우 강하며, 일반인들의 욕구를 반영한다"며 "그들이 앞으로 연립 정권의 파트너로 연방정부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평화저널리즘 연수 과정의 하나로 취재·작성되었습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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