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 책임소재 가리는중…'억울하다' 군내 일부 반발 움직임도
합동심문 결과도 넘겨 받아…귀순 2명은 北항구서 출발 때부터 탈북 결심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 소형 목선이 지난 15일 육·해군·해경 등 3중 경계망을 뚫고 강원도 삼척항에 정박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군의 합동조사가 28일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부터 합동참모본부, 육군 23사단, 해군 1함대 등 해상·해안 경계작전 관련 부대를 대상으로 진행해온 진상 규명 작업이 종료되면서 그간 제기돼온 각종 의혹이 해소될지 주목된다.
군의 한 소식통은 이날 "합동조사단의 조사에서 해안·해상 경계태세의 문제점은 파악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군내에서 허위보고나 은폐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합동조사단이 결론을 아직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경계실패·보고체계 허점은 파악…군 내부 책임소재로 '뒤숭숭'
합동조사단은 9일간의 조사 끝에 해안·해상 경계·감시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육군 23사단 지역에는 해안 감시레이더와 열상감시장비(TOD)가 배치되어 있고, 해군 함정이 해상에서 작전 활동을 펼칠 뿐 아니라 공중에서는 P-3C 해상초계기가 바다를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 방파제 부두에 접안했고, 타고 있던 주민 4명 중 2명이 내려 '서울에 있는 이모에게 전화하겠다'며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현지 주민에게 말을 걸기까지 군의 이런 감시망이 제구실을 못 했다.
북한 목선이 해군 작전구역에서 57시간 가량을 헤집고 다녔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셈이다.
군의 해안 감시레이더 요원들은 목선을 처음 포착했으나 '파도에 의한 반사파'로 오인했고, 보조 감시레이더를 통해서도 재차 포착했으나 이는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해안선 감시용 지능형 영상감시체계에 1초간 2회 포착됐으나, 남쪽 어선으로 착각해 식별하지 못했다.
공중에서는 P-3C 해상초계기가 초계 활동을 했지만, 이 목선의 진입을 포착하지 못했다.
합조단은 이번 조사에서 레이더 감시 요원들의 근무에 허점은 없었지만, 레이더에 포착된 표적을 판독 및 식별하는 작업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군내 보고체계에도 일부 문제점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목선은 15일 오전 6시 50분 민간인 신고로 최초 발견됐고, 육군 23사단 요원 1명이 오전 7시 35분 현장에 도착해 해경이 이 선박을 동해항으로 예인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23사단은 책임 지역에서 대북 상황이 발생하면 해군과 해경을 지휘하는 통합방위작전의 책임을 맡는 데 최초 발견 시점으로부터 45분이 지나서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해경 측은 23사단에도 북한 목선의 입항 사실을 전달했다고 밝히고 있어, 23사단 내부에서 보고체계가 신속하게 가동되지 않아 현장 출동이 늦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합조단은 23사단이 해경의 상황보고를 전달받고 늑장 출동을 한 경위를 파악하고, 관련 책임 소재를 가려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이 청와대 안보실보다 늦게 보고를 받은 경위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해경은 15일 오전 7시 8분 청와대에 최초 보고하고 7시 9분에 육군 37사단을 제외한 관련 기관에 전파했다. 정 장관과 박 의장 등 군 수뇌부는 청와대에 최초 보고된 이후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먼저 상황보고를 받은 청와대가 합참으로 확인 전화를 걸었다는 말도 나온다.
군의 경계·감시 실패와 보고체계 허점과 관련한 책임자들의 범위가 좁혀지면서 합참 등 군 내부에서는 "억울하다"는 뒤숭숭한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 '삼척항 방파제' 고의누락·은폐 파악 관건…일각 '셀프조사 한계' 지적
군이 사건을 언론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은폐 또는 허위·축소 행위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것도 이번 합동조사단의 중요한 임무다.
군 당국은 지난 15일 해경으로부터 북한 목선 발견장소를 '삼척항 방파제'로 전달받고도 입을 닫고 있다가, 지난 17일 첫 브리핑에서 '삼척항 인근'으로 발표했다. '삼척항 방파제'는 지난 18일 언론의 개별 취재를 통해 공식화됐다.
이를 두고 군이 발견장소를 고의로 누락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합동조사단도 국방부 대변인실과 합참 공보실 등을 대상으로 발표문에 '삼척항 인근'으로 명시된 경위, 청와대 지시나 외부의 압력이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규명했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파견할 때부터 허위보고 및 은폐축소 여부 등을 가려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군의 작전과 경계감시·보고체계 분야 등은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이 전문인데, 국방부 감사관실이 주도적으로 조사하는 데 역량 상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국방부 차원의 '셀프조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었다.
◇ '北목선 대기귀순' 의도 파악…"대공용의점 미식별"
합동조사단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선박에 탔던 북한 주민 4명의 합동심문 결과 자료를 지원받아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 4명 중 2명은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갔고, 2명은 귀순 의사를 밝혀 남한에 남았다.
국정원은 주민들을 심문한 결과 대공 용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합동조사단도 GPS 분석 결과에서 북한 목선이 먼바다를 돌아서 남하했다는 점, 북한 주민 진술 등을 토대로 국정원과 같은 평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1.8t 규모의 목선이 함북 경성에서 삼척항까지 700∼800㎞를 이동하려면 1천ℓ의 기름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선(母船)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인민복(1명)과 얼룩무늬 전투복(1명) 등 차림새를 보고 '위장침투'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합심 결과 국내에 남은 목선 선장 A 씨와 B 씨는 처음부터 탈북을 결심하고 배를 탔다. 선장은 가정불화가 원인이었고, 20대인 B 씨는 평소 남쪽 문화를 동경해 아이돌 걸그룹과 영화, 드라마 등을 보다가 당국에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모에게 전화하겠다면서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던 B 씨는 이모를 만날 생각에 다림질해서 준비해 온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틀간 조업을 하면서 잡아 올린 오징어를 놓아둘 공간이 부족해 함께 조업을 나온 인근 대형 선박에 오징어를 넘기고, 대신 음식과 기름을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등이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제출받은 검역 결과에 따르면 북한 목선에선 백미 28.8㎏, 양배추 6.1㎏, 감자 4.1㎏ 등 식물류 39㎏과 김치찌개, 멸치조림, 고추·깻잎 장아찌, 된장, 당면 등 음식물 10.3㎏이 발견됐다.
주민 4명은 합심 과정에서 모두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2명은 처음부터 탈북을 결심했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귀순 의사를 명확히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목선은 지난 15일 야간에 삼척항 인근 먼바다에서 엔진을 끄고 한참을 대기했다.
날이 새길 기다린 것은 야간에 해안으로 진입할 경우 있을 수 있는 군의 대응 사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진술도 했다고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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