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긴장감 여전…첫 전사자 유해 발굴·JSA 비무장화로 '평화의 바람'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회동을 하는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은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DMZ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의 산물이다. 남북은 155마일의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 양쪽으로 2㎞ 구간을 DMZ로 설정했다.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DMZ는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 됐다.
근년 들어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많이 낮아졌지만, DMZ에서는 여전히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남북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무장병력과 중화기를 집중시켜왔다.
북한군은 DMZ 내 감시초소(GP)에 박격포와 14.5㎜ 고사총, 무반동포 등 중화기를 배치했고, 한국군도 K-6 중기관총, K-4 고속유탄기관총 등을 GP에 반입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한국군 GP는 60여 개, 북한군 GP는 2.6배 많은 160여 개 가량인 것으로 전해진다. 양측의 전체 GP 병력 역시 2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규모의 병력이 최근접 거리에서 대치하는 지역은 전 세계에서 DMZ가 유일할 것이라고 군 관계자는 입을 모은다.
남북은 지난해 말 9·19 군사합의를 계기로 11개씩의 GP를 철거하는 등 DMZ를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여정에 착수했다.
강원도 철원의 DMZ 내에 있는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는 사상 첫 전사자 유해발굴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DMZ 서쪽에 위치한 판문점은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이자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상징적인 곳이다.
이곳의 명칭은 1951년 9월 유엔군 대표들이 중국군 대표들이 회담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널문리의 한 이름 없는 주막에 '판문점'이라는 간판을 걸어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MDL을 따라 3채의 하늘색 건물, 즉 T1(중립국감독위원회 회담장)·T2(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T3(실무장교 회의실)가 들어서 있다.
원래 판문점 내에서는 남북 경계가 없었으나 1976년 '도끼만행 사건' 이후 판문점 내에도 MDL이 그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 당일 첫 만남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하며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다.
이에 앞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곳을 통해 소 떼를 끌고 방북했으며 지금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이뤄지는 남북간 소통업무로 이곳에 상주하는 남북 연락관을 통해 이뤄졌다.
부동자세의 남북 경계병이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으로 익숙한 판문점 역시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남북과 유엔사는 9·19군사합의에 따라 지난해 10월 공동경비구역(JSA)에 남아있던 지뢰를 제거하고, 남북 초소 9곳을 폐쇄한 뒤 모든 화기와 탄약도 철수시켰다. 불필요한 감시장비도 제거했다.
실탄이 들어있는 권총을 휴대한 채 근무를 섰던 남북 경비대원들도 지금은 모두비무장 상태다.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의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행사 만찬 건배사에서 북측과의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작업을 통해 "어떤 미래가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해 잠깐 볼 수 있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js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