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연안 서식 밍크고래 멸종 우려…다른 개체군 묶어 '통계 착시' 유도 지적도
젊은 층 외면에 수요증가 난망…"전통문화 보호 측면 더 커" 반론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일본이 상업적 목적의 고래잡이를 31년 만에 재개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일부 고래 종들이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30일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공식 탈퇴했고, 고래잡이 거점인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와 홋카이도(北海道) 구시로에선 포경선이 출항했다.
일본 근해에서 포경을 시작한 고래잡이 배들은 태평양, 오호츠크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도 조업할 예정이다.
연간 쿼터는 밍크고래 171마리와 브라이드고래 187마리, 보리고래 25마리다.
일본 수산청은 100년 동안 계속 잡아도 개체 수가 줄지 않는 수준으로 쿼터를 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이 서식지와 습성이 서로 다른 여러 개체군을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통계 착시'를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북방 밍크고래의 개체 수는 20만 마리로 멸종위기와 거리가 먼 관심필요종(LC·least concern)으로 분류되지만, 일본과 한국 근해에 서식하는 밍크고래 개체군은 오랜 포경과 혼획 등으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IWC 과학위원회 소속 해양생물 전문가인 저스틴 쿡은 2일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일본 근해에서 잡히는 고래는 두 종류"라면서 "이중 동해와 서해, 동중국해 연안에서 발견되는 종류는 일본과 한국의 오랜 포경 역사 때문에 개체 수가 심각하게 줄었다"고 말했다.
'J 계군'으로 불리는 이 개체군은 다른 수염고래들과 달리 겨울이 아닌 여름에 새끼를 낳는다.
역시 일본 근해에 출몰하는 다른 개체군인 'O계군'의 개체수는 2만5천 마리로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러시아 영해인 오호츠크해 북쪽 해역에 주로 머무른다.
전문가들은 무차별적으로 포경이 이뤄지면 러시아 영해에 있어 잡기 어려운 O 계군보다는 J 계군에 속한 밍크고래들이 '주 타깃'이 돼 개체군이 소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사정은 일본의 포경 대상이 된 다른 고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태평양에 사는 브라이드고래는 서로 다른 행동 패턴을 지닌 5개 개체군으로 나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일본 과학자들은 이를 부정한다.
각 개체군의 차이를 인정하면 사실상 포경이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쿡은 "일본 과학자들은 연안에서만 자료를 수집하고선 북태평양 전역의 브라이드고래가 하나의 개체군에 속한다고 주장한다"고 꼬집었다.
현재 북태평양의 브라이드고래 개체 수는 2만6천 마리 내외로 추산된다.
일본은 1987년부터 브라이드고래 사냥을 금지했다가 2000년부터 '학술 연구'를 핑계로 매년 50마리씩을 포획해 왔다.
이밖에 일본이 포경 대상으로 지목한 3종의 고래 중 가장 큰 보리고래(몸길이 약 20m)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위기종(endangered)이다.
보리고래 개체 수는 5만 마리로 추산되며 차츰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멸종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일본에선 상업적 포경이 허용돼도 고래고기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이후 미 군정은 고래고기를 저렴한 단백질 섭취 수단으로 장려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노년층은 고래고기에 향수를 느끼지만 젊은 층은 고래고기 특유의 맛과 냄새를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 외무성과 NHK가 최근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포경 재개를 지지하지만, 굳이 고래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인 응답자가 다수였다.
그린피스 일본지부의 다카다 히사요는 "포경은 예민한 민족주의적 사안"이라면서 "포경을 지지하는 건 그 자체보다 일본인의 자존심과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상업적 포경이 허용된 만큼 포경업계에 지급하던 보조금도 대폭 줄일 계획이다.
NYT는 고래고기 수요 감소와 인건비 상승이란 경제적 현실에 직면한 일본 포경업계가 앞으로 더 큰 고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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