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둣방 가족을 통해 본 인간 밑바닥…오페라 '텃밭킬러'

입력 2019-07-03 06:00  

구둣방 가족을 통해 본 인간 밑바닥…오페라 '텃밭킬러'
3∼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오페라는 유모차에 의지한 할머니 '골륨'의 불안한 걸음으로 시작한다. 술주정뱅이 아들 '진로'는 골륨에게 제발 좀 빨리 죽어달라고 종용한다.
3일 초연하는 서울시오페라단 창작오페라 '텃밭킬러'는 첫 장면처럼 내내 불편함을 핵심 정서로 끌고 간다.
작품 배경은 옥상의 작은 구둣방이다. 한뼘 남짓한 공간에 골륨과 진로, 진로의 큰아들 '청년'과 그의 연인 '아가씨', 작은아들 '수음'까지 다섯 명이 산다. 이 가족은 93세 노인 골륨이 남의 텃밭에서 훔쳐온 채소를 판 돈에 기생해 연명한다.
진로는 아내가 떠난 뒤 노동하지 않는다. 늘 라디오를 껴안은 채 전쟁 뉴스가 나오기만 기다린다. 사지가 멀쩡한 큰아들도 노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초등학생 수음이는 학교에 안 간다. 급식에 고기반찬이 나올 때만 가끔 들른다. 관심사는 온통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자신의 고추다.
이들 가족의 유일한 재산은 골륨의 입속 금니 세 개다. 진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청년은 연인과 결혼을 위해, 수음이는 노스페이스 점퍼가 사고 싶어서 할머니에게 금니를 뽑아달라고 조른다.

이들 관계에 사랑은 없다. 진로는 골륨에게 망치를 휘두르며 위협하고, "금니는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로테스크한 바이올린 소리가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골륨도 아들을 연민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진로에게 "평생 나를 뜯어먹더니, 그렇게 내 몸을 헤프게 쓰더니…"라고 악다구니를 쓴다. 끝내 스스로 이를 뽑아 꿀꺽 삼켜버린다.
제작진은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작품에 던진 의문점에 답했다.
'텃밭킬러'에는 클래식 오페라 '마술피리'나 '라 트라비아타'가 보여주는 화려한 아리아와 아름다운 의상은 없다. 영화 '기생충'처럼 빈곤층 삶을 명징하게 드러내 자본주의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겠다는 연출가 의도가 엿보인다.
장영아 연출은 "구둣방이 옥상에 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지 않나. 땅에 발 딛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윤미현 작가는 "'진로'는 현재 삶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공평한 시점에서 시작할 수 있기에 날마다 전쟁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참신한 소재에 견줘 메시지는 직접적이다. 세련된 풍자 대신 대놓고 성악 발성으로 "노스페이스 사주세요", "(섹스) 하자"라고 외치는 장면은 거북함을 남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들에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기도 어렵다.
원래 기발함으로 극찬 받은 연극 대본에서 출발한 만큼, 차라리 60분 남짓 연극으로 풀었다면 컬트적 블랙코미디가 될 뻔했다. 110분간 노래와 연극 대사가 교차하는 형식은 다소 산만했다. 오페라라는 형식이 극에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안효영 작곡가는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들은 전체가 음악으로 가는 게 많다. 그런 것에 익숙하실 텐데 시대별로, 나라별로 대사가 많은 오페라도 있다. 그런 걸 알았기에 자신감을 얻었다"며 "한국 오페라의 외연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 예술감독은 "이 시대를 가장 잘 투영할 작품을 올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진로 역에는 바리톤 장철, 골륨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신민정과 김보혜, 아가씨 역에는 소프라노 이세희와 윤성회, 청년 역에는 테너 석정엽과 조철희, 수음 역에는 테너 홍종우와 도지훈, 경찰 역에는 배우 유원준이 출연한다. 정주현이 지휘하고 오세스트라 디 피니가 연주한다.
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3만∼7만원.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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