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안보부 감사관실 보고서 "열악한 시설 문제, 훨신 더 광범위"
미 전역서 구금시설 폐쇄 시위…법원, 불법입국 망명자 구금 방침에 제동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4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철창 안 공간에 88명의 이민자가 발 뻗고 누울 공간도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 남성은 '도와달라'고 적은 종이를 창문에 내보이고 있고, 기도하는 듯 두 손을 모은 남성도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감사관실이 2일(현지시간) 공개한 미국 남부 국경 이민자 구금시설 내부의 모습이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사관실 직원들은 지난달 미국 텍사스 남부 리오그란데 밸리의 이민자 시설 5곳을 방문한 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혼잡하고 불결한 시설들의 문제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고 전했다.
보고서에서 한 정부 고위 관리는 이민자 구금시설의 상황이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 시설에선 연방법이나 국경순찰대 규정 위반 소지가 있는 상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구금시설 중 두 곳은 감사관실 직원이 방문하기 전까지 아동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성인에게 계속 볼로냐 소시지가 들어간 샌드위치만 주기도 했다.
구금된 아동 2천669명 중 31%는 72시간 이상 구금돼 있었고, 7살 이하 어린이 50명 이상은 장기 수용시설로 이동하기 전에 두 주 이상 구금시설에 머물러야 했다.
한 달 동안 샤워를 못 하고 물수건으로 대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갇혀 지내면서 보안 사고의 위험도 커졌다.
한 시설에선 유치장 청소를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온 이민자들이 유치장으로 돌아가길 거부한 일이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유치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담요나 양말을 변기에 넣어 막히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감사관실 직원들이 시설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민자들이 안에서 벽을 두드리거나 종이를 펼쳐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이번 보고서와 사진들로 이민자 관리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졌다.
전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텍사스 엘패소와 클린트의 이민자 시설을 방문해 실태를 전했고 앞서 이민 변호사들도 이민 아동들이 구금시설의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비인간적인 이민자 구금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는 이민자 구금시설의 폐쇄를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고 UPI통신 등이 전했다.
국경의 이민자 구금시설 인근은 물론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곳곳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의 강경한 이민정책에 항의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민자 구금 방침에 제동을 거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워싱턴주 서부 연방지방법원의 마샤 페치먼 판사는 이날 미국에 불법으로 입국해 망명을 신청한 이들을 구금하는 대신 보석 심리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미 법무부는 오는 15일부터 이민자들의 보석 심리 없이 구금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미국시민자유연맹 등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