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저작 '해동화식전'에 나온 이재의 달인 이진욱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장례를 치르는 날에는 횃불을 받들고 인파가 길 양편에 천막을 연달아 치고 족자를 줄지어 세웠다. 가까운 사이를 따질 것 없이 다들 부의금을 보내고 찾아와 조문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조선 후기 문인 식니당(食泥堂) 이재운(1721∼1782)은 저작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에서 치산(治産)을 잘해 거부가 된 이진욱 장례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진욱은 한양의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숙부에게 의탁해 지냈다. 이웃에 사는 부자 노인이 은전 1천 냥을 주자 이 돈을 사업에 활용해 거부가 됐다.
일몽(一夢) 이규상이 쓴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도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실물은 확인되지 않은 해동화식전을 최근 입수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진욱을 '자수성가형 부자'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해동화식전에는 거부 9명의 사례가 나오는데, 이진욱 열전은 흉년에 기민을 구제하고 부를 일군 최생 열전과 함께 길이가 가장 길고 작품성도 뛰어나다"며 "이진욱의 성공과 부의 향유는 비난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존경받아야 할 일이고 부러운 일로 묘사됐다"고 4일 말했다.
안 교수는 이진욱이 돈을 번 비법 중 하나가 국제무역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진욱은 은전을 받은 뒤 동래왜관에 가서 생면부지의 왜인 머슴을 동업자로 영입했고, 왜인은 일본에 가서 장사를 잘해 불린 자산을 이진욱에게 건넸다. 이후에도 이진욱은 중국, 일본 상인과 거래를 이어갔다.
또 다른 이재(理財) 방법은 도고(都賈), 즉 매점매석이었다. 이진욱은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행을 알아차린 뒤 왜인 머슴 제안으로 전 재산 3만 냥을 서북 지역 인삼을 사는 데 투자했다. 인삼은 결국 고갈됐고, 이진욱은 10배의 이익을 남겼다.
이재운은 해동화식전에 "호조에서 일본에 보낼 예물을 장만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인삼을 준비해 놓으라고 독촉했지만, 인삼이 없었다"며 "진욱은 호조가 준 은전 수량에 맞게 인삼을 공급했고, 공로를 인정받아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를 받았다"고 적었다.
안 교수는 "이진욱은 18세기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한 도고의 치산 방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며 "재계의 큰 세력과 결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부를 축적한 이진욱은 상인에서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상단을 꾸려 행상꾼에게 자금을 댔고, 대부업을 해 이자를 챙겼다.
시전 상인이 아니면서도 갑부로 거듭난 이진욱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고, 화류계도 장악했다. 의금부 당상관 명령을 받은 나졸을 죽도록 매질해도 지적을 받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진욱이 수하 사람과 지인에게 인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친구와 친지에게 생활비와 경조사비를 줬고, 자신이 부리는 행상꾼 가족을 돌봤다.
안 교수는 "이재운은 도고를 윤리와 도덕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았고, 효과적 치산 방법의 하나로 간주했다"며 "도고와 함께 부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상행위로 든 것이 고리대금업에 해당하는 이자놀이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는 의지, 지혜, 용기, 정성을 꼽고 마지막으로 남과 함께 하되 속이지 않는 신의를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이재운이 강조한 신의는 최생 열전에도 나타난다. 한양 선비 최생은 가세가 기울고 과거에 떨어지자 충북 청주로 낙향했고, 곡식을 사들여 창고에 쌓아뒀다.
그러다 흉년이 오자 굶주린 마을 주민들을 구제하고 농사를 짓도록 도왔다. 주민들은 풍년이 들자 최생에게 이전에 받은 쌀의 몇 배에 달하는 분량을 전달했고, 거부가 된 최생은 노비들에게 재산을 나눠줬다.
또 수완이 없어 거지로 살면서도 부를 모은 자갈쇠(者葛衰) 사연도 신의가 핵심이다. 자갈쇠는 물건과 화폐를 잘 지켜준다는 신뢰를 쌓았고, 신용이 중국 상인에게까지 알려져 부를 일궜다.
안 교수는 "자갈쇠 사연은 이후 다양한 문인에 의해 파생작이 나왔고, 최생 열전은 '기문총화'를 비롯한 야담집에 그대로 전재됐다"며 "해동화식전이 후대 야담에 끼친 큰 기여는 우연적이고 환상적인 치산 과정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과정과 방법으로 전환하도록 추동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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